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87> 배우 강석우
“어릴 때부터 빠져 살았죠” 배우에서 가곡 전파자로 새 무대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2026.10.1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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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강석우가 지난 4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동국대 건학 120주년 기념 ‘목멱 가곡의 밤’에서 해설과 진행을 하고 있다. 이날 그가 작곡한 가곡 ‘국화 옆에서’가 처음 무대에 올랐다. 본인 제공 |
- 가곡 쓰고 부르며 ‘음악인’ 활동
- ‘밤눈’‘국화 옆에서’ 등 12곡 창작
- 매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
- 일반관객에 역사 등 음악해설도
◇ 강석우의 인생이모작 귀띔
- 배우는 것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게 인생이죠
“다시 푸르렀던 그때 돌아갈 순 없겠지만 당신이 함께라면 아무 상관 없어….” 인터뷰 도중 청해 들은, 아내에게 바친 가곡 ‘시간의 정원에서’의 마지막 소절이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노래에도 마음이 뭉클했다. 이번에는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배우 강석우(69)를 만났다. 오랫동안 연기자와 방송인으로 살아온 그는 요즘 가곡을 쓰고 부르며, 음악을 해설하며 강의한다. 오래 품었던 음악 사랑이 이제 삶의 중심으로 들어왔단다. 여러 차례 일정을 맞춘 끝에 지난 6일 전화로 그의 인생이모작 이야기를 들었다.
-연기자와 방송인으로 살아오다가 가곡 창작과 음악 해설로 활동을 넓혔군요. 언제부터 이러한 전환이 시작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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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직접 구한 모차르트 편지 모음집(위)과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 사용한 해설 원고. 그는 해설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음악가들의 삶과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본인 제공 |
-방송인으로 활약하면서도 가곡 사랑을 실천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2015년 CBS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맡았습니다. 담당 PD에게 우리 가곡을 틀자고 했더니 좀 주저하더군요. 그런데 가곡을 방송하니 청취자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도 매일 들려주자는 말에는 선뜻 답이 없더군요. 어느 날 저는 생방송 도중 매일 우리 가곡을 들려드리겠다고 청취자들에게 약속을 해버렸습니다. PD가 저를 쳐다보더군요(웃음). 그러나 청취자와 약속했으니 지켜야죠. 이후 PD가 방송 시간을 오전 10시로 고정하면서 ‘10시 가곡’ 코너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가 오래 품은 가곡 사랑은 이렇게 클래식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다. 그가 배우와 진행자로 쌓은 친숙함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배우 강석우는 안방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던 연기자였다. 어떤 이에게는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서 유려한 진행을 해왔던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한 배우가 이젠 가곡의 전파자가 되었다.
-가곡을 소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하였다지요.
▶청취자들과 약속한 가곡 일곱 곡을 썼는데, 그 뒤에도 계속 쓸 이유가 생겼어요. 요즘은 늘 노랫말로 쓸 만한 시어를 모으고 글을 씁니다. 감정이 오면 곡을 붙이죠. 지금까지 열두 곡을 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자칫하여 우리 세대가 지나가면 가곡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좋은 노래를 잊고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가곡의 앞날을 걱정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가 가곡을 좋아하는 데는 가곡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학창 시절의 추억도 있기 때문이죠. 음악 시간과 각종 대회에서 불렀던 추억 같은 것이죠. 그 아름다운 정서는 평생을 갑니다. 지금의 학교에서는 그러한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가곡을 사랑할 수 있도록 무언가 해야 해요. 방송에서도 무언가 했으면 좋겠어요.
그의 가곡 사랑은 다음 세대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요란한 ‘K-컬처’ 열기의 이면에 청소년이 학교에서 시를 읽고 함께 노래하는 시간이 어떤지 돌아볼 일이다. 문화적 취향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선택할 기회는 사회가 마련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성적과 진학을 챙기는 데는 열심이다. 그만큼 평생 마음에 품고 부를 노래도 가르쳐주고 있을까.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직접 작사 작곡을 하시는 데는 어려움이 없나요.
▶노랫말을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가사의 조사 하나를 바꾸면 문장의 의미가 다 바뀌죠. 고치고 또 고치고, 어떤 때는 아예 전문을 다 버리고 다시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글이 만들어지면 곡을 붙입니다. 어렵죠. 하지만 저에겐 오랫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제 안에 쌓인 선율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젊은 작곡가에게 들려주고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글에도 곡을 붙였지요? 또 어떤 곡을 만들었습니까.
▶저는 소설가 최인호 형이 쓴 글에 송창식 가수가 곡을 붙인 노래 ‘밤눈’을 너무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 노래가 담긴 태블릿을 배 위에 올린 채 들으며 잠들곤 했어요. 그러다가 인호 형이 작고하셨기에 형수에게 말씀드려 그 문구를 받아 가곡을 만들었어요. 그게 ‘밤눈’이에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를 들은 미당연구소 소장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미당의 시에도 그런 곡을 붙여달라는 의뢰였어요. 그래서 만든 것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국화 옆에서’입니다.
-그런 스토리가 있군요.
▶저의 열두 번째 가곡 ‘국화 옆에서’는 2026년 4월 30일 국립극장 공연에서 선보였고, 9월 3일 음원으로 발표했습니다. 아끼는 동생인 가수 유열이 노래했으며, 저는 뮤직비디오의 연출과 편집에도 참여했었죠.
-유튜브 채널 ‘강석우의 오마이강’에 보니, 특히‘시간의 정원에서’가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저의 많은 생각과 글을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있지만 특히 음악은 유튜브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척추관협착증으로 정말 고생 많이 할 때 저는 수술을 하지 않고 걷는 것으로 회복하기로 했어요. 폭우가 쏟아져 발목이 잠길 때에도 엄청난 고통 속에서 남산을 걸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정말 헌신적으로 저를 도왔습니다. 그때 저는 그 통증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그래도 삶이 얼마나 고마운지에 대해 끙끙거리며 글을 썼어요. 아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글도 있었는데, 그 글에 곡을 붙여 만든 것이 ‘시간의 정원에서’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내에게 좋은 선물을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전화로 인터뷰하면서 요청한 노래를 그는 망설임 없이 불렀다. “… 당신이 함께라면 아무 상관 없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던 두 사람의 시간이 짧은 음률에 실려 있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은 그 특유의 폭넓은 은유적 힘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알 수 없는 것을 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함께 견딘 시간이 노래가 되자, 그의 아내를 향한 감사가 듣는 이의 마음에도 와닿았다.
-앞으로도 가곡으로 계속 활동하시겠군요.
▶최근 가곡 ‘시간의 정원에서’의 가사를 영어로 옮겼어요. 영어로 옮길 때 뉘앙스가 매우 중요하기에 영어 전공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영어 가사에 맞춰 곡을 다시 쓰고 있습니다.
-창작 외에도 음악 해설과 강의를 하시죠? 공부는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최근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되었어요. 주로 서양음악을 많이 공부하는데, 음악을 이야기하려면 인물사와 역사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아침 일곱 시부터 오후 두세 시까지 책상에 앉아 강의와 음악회 해설 원고를 준비합니다. 말하는 시간은 짧아도 준비할 것은 많죠. 저는 저 자신을 전공자와 일반 관객 사이의 메신저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메신저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지난 4월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다가 1880년에 문을 연 음악 전문 서점 ‘카사 베토벤’에서 모차르트의 편지를 모은 책을 구했습니다. 서양 음악사는 음악인의 편지에 많이 담겨 있죠. 요즘은 그 편지를 번역하며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의 음악 해설에는 저만이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 있지요. 저는 매월 열리는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서 음악 해설을 맡고 있어요. 매번 2천 석이 넘는 객석이 꽉 차는데, 음악과 함께 제가 건진 다른 역사 지식을 합쳐서 설명하면 너무들 좋아하시죠.
-젊을 때부터 나이 든 뒤의 삶을 생각하셨나요.
▶저는 젊을 때부터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자주 생각했어요. ‘애늙은이’라는 소릴 듣기도 했고요.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듣고 공부한 것도 그런 준비의 일부였습니다. 요즘은 제 모습을 보고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글을 보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이 드는 삶에 대한 좋은 기대를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제가 살아온 삶의 의미라고도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하용조 목사님 설교 듣고 성경 한 장 읽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죠. 거창한 계획보다는 아내의 마음을 편하게 하며 잘 지내는 것이 제게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의 시간을 충실히 채우고자 하지요. 좋아하는 음악을 공부하고, 마음에 떠오른 말을 수집하며 다듬고, 악상이 생기면 곡을 씁니다. 그렇게 쌓인 하루가 다음 작품과 새로운 활동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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