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49> 남해안 흑염소 보양식들
그 강인한 힘을 다오 불고기로, 탕으로…남해안 보양 끝판왕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4.10.29 19:30
- 산악 바위·절벽 좋아하는 습성
- 옛부터 남부지역 섬에 방목
- 동의보감, 보혈에 탁월함 기술
- 금정산성 석쇠불고기로 명성
- 경남 고성 시원한 ‘총쟁이 국밥’
- 장날 음식으로 시작돼 대중화
- 전남 수육으로 끓여낸 양탕
- 보성·화순 대표적 복달임 메뉴
오래전 한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경남 남해안 한려수도 일대를 취재할 때 일이다. 어선을 빌려 대매물도 해안을 취재하다가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검은 짐승이 아슬아슬하게 길을 내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동물을 ‘산양(山羊)’이라 불렀다.
섬에서 방목하는 흑염소였다. 워낙 섬의 산악지대, 특히 바위나 절벽 등의 지형을 좋아하다 보니 산양만큼 강건한 데다 섬에 자생하는 온갖 약초와 나물을 뜯어 먹으니 약효까지 대단한 동물이란 뜻으로 그렇게 부른 것이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육지 사람들이 약성 좋은 섬의 흑염소를 비싼 값에 미리 주문하면 주민들이 이놈들을 키운단다. 거의 입도선매 방식으로 팔려나가는 아주 귀한 보양용 가축이라는 뜻이다. 바로 흑염소이다. 말마따나 이 흑염소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보양 식재료로 널리 활용돼 왔다.
■보혈·보양에 탁월한 약용 동물
흑염소는 동의보감 등 여러 문헌에 ‘허약한 사람을 낫게 하고 보양 강장에 좋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기술하고 있고, 한방에서도 ‘인삼은 기(氣)를, 염소는 피(血)를 보한다’고 할 정도로 보혈·보양에 탁월한 대표적 약용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오래전 자손이 귀한 집 아낙들은 해산 후 염소를 오랜 시간 곤 곰국을 먹었다. 산모의 산후조리를 돕고, 아기에게 제공되는 젖의 영양소가 탁월해지기에 그랬다고 한다. 특히 염소 사골은 산모와 아기를 더불어 튼튼하게 하기에 아주 귀히 여기며 먹었다고 한다.
흑염소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주로 방목하는 형태로 널리 사육했다. 흑염소가 초지가 많은 산간 지역, 해안 바위나 절벽이 있는 지형을 좋아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남해안 다수의 섬에서 흑염소 방목이 많이 행해지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한국의 남부 지방에서는 이 흑염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 보양용 가축으로 여러 보양식에 소용되기에 그랬을 것이다. 우선 염소탕과 염소 수육이 있을 것이고, 염소 불고기, 염소 전골, 염소 육회 등도 있겠다.
특히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름과 조리법의 염소 음식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부산의 금정산성 ‘흑염소 불고기’와 경남 고성의 ‘총쟁이 국밥’과 ‘흑염소 석쇠 구이’, 전남 보성과 화순의 ‘양탕(羊湯)’이다.
금정산성 ‘흑염소 불고기’는 부산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데, 흑염소 고기를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재웠다가 숯불에 직화로 구워 먹는 음식이다. 예부터 금정산성마을은 물 맑고 공기 좋아 양질의 누룩과 막걸리를 생산해 생계를 이어온 곳이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세법에 따라 누룩 생산이 금지된 후, 이곳 주민은 금정산 자락에 펼쳐진 좋은 자연환경에서 흑염소를 사육하면서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됐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흑염소 불고기는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고추장에 마늘 생강 파 양파 등의 양념과 단맛을 위한 배즙, 누린내를 제거하는 소주 등을 함께 넣고 버무려 재워둔다. 숙성한 고기는 숯불에 석쇠로 바로 구워 접시에 담아내는데, 이를 상추를 비롯한 여러 채소에 올리고 마늘 청양초 등을 함께 얹어서 먹는다. 이곳의 흑염소 불고기는 산성 막걸리와 잘 어울려 함께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들 한다.
■민족 전통 복달임 음식 중 하나
경남 고성장에는 ‘총쟁이 국밥’이라는 이름을 지닌 흑염소 국밥이 유명하다. 6·25 한국전쟁 이후 고성장에는 총쟁이(포수) 집안의 여인인 고 박덕선 할머니가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국밥을 팔았는데, 그 맛이 좋아 장날이면 인근 지역에서 이 국밥을 먹으려고 일부러 장을 찾곤 했다고 한다. 원래는 고성장의 ‘총쟁이집’이라는 국밥집의 국밥에서 유래했는데, ‘총쟁이 국밥’이 이제는 고성을 대표하는 ‘염소 국밥’으로 보통 명사화된 것이다.
‘총쟁이 국밥’은 맑은 소고기국밥처럼 생겼다. 염소 사골과 고기 내장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여낸다. 국물은 진하면서도 시원하고 개운하다. 육수에 대파 양파 무 콩나물 얼갈이 등을 넣어 국물의 균형을 맞춘다. 여기에 직화로 구운 ‘흑염소 석쇠불고기’를 함께 곁들일 수도 있다. 석쇠불고기는 불향이 좋은 데다 부드러우면서도 달고 고소하다. 육즙도 촉촉하고, 암컷 흑염소만 사용하기에 누린내가 없는 것이 매력적이다.
■보성의 양탕도 뺄 수 없지
전남 보성을 비롯해 화순 등지에선 여름철에 흑염소를 이용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 이곳 이름으로 ‘양탕’.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한 철에 한 번은 먹어야만 되는 계절식이기도 하다. 보성과 화순의 복달임 음식쯤으로 볼 수 있겠다.
양탕은 누린내가 적은 암컷을 쓴다. 마늘과 생강을 넣은 물에 고기를 하룻밤 고아 수육을 만들고 그 고기를 손으로 잘게 찢은 후, 말린 토란대와 머윗대 고춧가루 된장 등을 넣어 끓여낸 국물에 고기를 넣고 다시 끓여낸다. 양탕을 먹을 때는 부추를 넉넉히 올려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더 좋다.
양탕 안의 수육은 별미로 꼽히는데, 고기는 야들야들 부드러우며 껍질은 오돌오돌 쫀득쫀득하다. 들깨 소스에 초고추장을 함께 찍어 먹는데, 이때 생강 채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어진다. 혹시 있을 고기 누린내는 물에서 7시간 정도 삶아 수육을 만들고 다시 15시간 정도 건조 과정을 거쳐 냄새를 잡아준단다.
이렇듯 남부지방에는 흑염소로 수육 불고기 탕 전골 등으로 널리 즐겨 먹어왔다. 특히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복달임 음식인 보신탕을 대용해서 보양식으로 활용한 식재료가 바로 흑염소이다. 그래서 탕이나 전골 수육 등은 기존 보신탕의 조리법과 먹는 방식 등이 흡사한 일면이 있기도 하다.
여하튼 지역마다 다양한 이름과 조리법으로 그 지역의 향토음식이자 보양음식으로 역할을 톡톡히 한 남부지방의 흑염소 음식들. 그 이름이나 요리법은 조금씩 달라도 흑염소로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며 함께 먹었던 시간은 모두 한결같았으리라. 겨울을 맞이하기 전 가을을 든든히 보내려 할 때, 가족 친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음식이 흑염소 요리이겠다.
- 옛부터 남부지역 섬에 방목
- 동의보감, 보혈에 탁월함 기술
- 금정산성 석쇠불고기로 명성
- 경남 고성 시원한 ‘총쟁이 국밥’
- 장날 음식으로 시작돼 대중화
- 전남 수육으로 끓여낸 양탕
- 보성·화순 대표적 복달임 메뉴
오래전 한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경남 남해안 한려수도 일대를 취재할 때 일이다. 어선을 빌려 대매물도 해안을 취재하다가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검은 짐승이 아슬아슬하게 길을 내며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동물을 ‘산양(山羊)’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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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부터 부산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 금정산성 흑염소 불고기, 염소 사골과 고기 내장 부위를 함께 넣고 끓인 경남 고성의 총쟁이 국밥, 복달임 음식으로 먹는 전남 보성의 양탕(보성군 제공). |
마을 사람들 말로는, 육지 사람들이 약성 좋은 섬의 흑염소를 비싼 값에 미리 주문하면 주민들이 이놈들을 키운단다. 거의 입도선매 방식으로 팔려나가는 아주 귀한 보양용 가축이라는 뜻이다. 바로 흑염소이다. 말마따나 이 흑염소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보양 식재료로 널리 활용돼 왔다.
■보혈·보양에 탁월한 약용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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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래전 자손이 귀한 집 아낙들은 해산 후 염소를 오랜 시간 곤 곰국을 먹었다. 산모의 산후조리를 돕고, 아기에게 제공되는 젖의 영양소가 탁월해지기에 그랬다고 한다. 특히 염소 사골은 산모와 아기를 더불어 튼튼하게 하기에 아주 귀히 여기며 먹었다고 한다.
흑염소는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주로 방목하는 형태로 널리 사육했다. 흑염소가 초지가 많은 산간 지역, 해안 바위나 절벽이 있는 지형을 좋아하기에 그렇다. 그래서 남해안 다수의 섬에서 흑염소 방목이 많이 행해지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한국의 남부 지방에서는 이 흑염소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 보양용 가축으로 여러 보양식에 소용되기에 그랬을 것이다. 우선 염소탕과 염소 수육이 있을 것이고, 염소 불고기, 염소 전골, 염소 육회 등도 있겠다.
특히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름과 조리법의 염소 음식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음식이 부산의 금정산성 ‘흑염소 불고기’와 경남 고성의 ‘총쟁이 국밥’과 ‘흑염소 석쇠 구이’, 전남 보성과 화순의 ‘양탕(羊湯)’이다.
금정산성 ‘흑염소 불고기’는 부산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데, 흑염소 고기를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에 재웠다가 숯불에 직화로 구워 먹는 음식이다. 예부터 금정산성마을은 물 맑고 공기 좋아 양질의 누룩과 막걸리를 생산해 생계를 이어온 곳이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주세법에 따라 누룩 생산이 금지된 후, 이곳 주민은 금정산 자락에 펼쳐진 좋은 자연환경에서 흑염소를 사육하면서 이곳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됐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흑염소 불고기는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고추장에 마늘 생강 파 양파 등의 양념과 단맛을 위한 배즙, 누린내를 제거하는 소주 등을 함께 넣고 버무려 재워둔다. 숙성한 고기는 숯불에 석쇠로 바로 구워 접시에 담아내는데, 이를 상추를 비롯한 여러 채소에 올리고 마늘 청양초 등을 함께 얹어서 먹는다. 이곳의 흑염소 불고기는 산성 막걸리와 잘 어울려 함께 먹어야 제맛이 난다고들 한다.
■민족 전통 복달임 음식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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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염소로 만든 전골(위 사진)과 수육. 수육은 생강채를 곁들이면 더 맛있다. |
‘총쟁이 국밥’은 맑은 소고기국밥처럼 생겼다. 염소 사골과 고기 내장 부위를 함께 넣고 푹 끓여낸다. 국물은 진하면서도 시원하고 개운하다. 육수에 대파 양파 무 콩나물 얼갈이 등을 넣어 국물의 균형을 맞춘다. 여기에 직화로 구운 ‘흑염소 석쇠불고기’를 함께 곁들일 수도 있다. 석쇠불고기는 불향이 좋은 데다 부드러우면서도 달고 고소하다. 육즙도 촉촉하고, 암컷 흑염소만 사용하기에 누린내가 없는 것이 매력적이다.
■보성의 양탕도 뺄 수 없지
전남 보성을 비롯해 화순 등지에선 여름철에 흑염소를 이용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 이곳 이름으로 ‘양탕’. 여름철 대표 보양식으로 한 철에 한 번은 먹어야만 되는 계절식이기도 하다. 보성과 화순의 복달임 음식쯤으로 볼 수 있겠다.
양탕은 누린내가 적은 암컷을 쓴다. 마늘과 생강을 넣은 물에 고기를 하룻밤 고아 수육을 만들고 그 고기를 손으로 잘게 찢은 후, 말린 토란대와 머윗대 고춧가루 된장 등을 넣어 끓여낸 국물에 고기를 넣고 다시 끓여낸다. 양탕을 먹을 때는 부추를 넉넉히 올려 함께 먹으면 그 맛이 더 좋다.
양탕 안의 수육은 별미로 꼽히는데, 고기는 야들야들 부드러우며 껍질은 오돌오돌 쫀득쫀득하다. 들깨 소스에 초고추장을 함께 찍어 먹는데, 이때 생강 채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있어진다. 혹시 있을 고기 누린내는 물에서 7시간 정도 삶아 수육을 만들고 다시 15시간 정도 건조 과정을 거쳐 냄새를 잡아준단다.
이렇듯 남부지방에는 흑염소로 수육 불고기 탕 전골 등으로 널리 즐겨 먹어왔다. 특히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복달임 음식인 보신탕을 대용해서 보양식으로 활용한 식재료가 바로 흑염소이다. 그래서 탕이나 전골 수육 등은 기존 보신탕의 조리법과 먹는 방식 등이 흡사한 일면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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