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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8> 계란밥과 타마고카케고항

뜨끈한 밥에 날계란 쓱쓱…정갈한 한그릇의 호사, 이 맛에 행복했다…韓日 격변의 시대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2025.03.18 19:02
- 한 끼 간단히 때우는 ‘계란밥’
- 1960~70년대엔 접하기 힘들어
- 고소한 노른자 비벼 추억의 맛

- 日에도 비슷한 타마고카케고항
- 계란 유통부터 ‘바로 섭취’ 고려
- 낫또·잔멸치·명란젓 곁들여 먹어

출출해서 밥은 먹어야겠고 제대로 된 밥상은 차리기 싫고, 또는 혼자 간단히 먹어야 할 때 안성맞춤의 식사가 있다. 간편하면서도 영양가는 높고 별다른 반찬이 없어도 든든한 한 끼니의 식사, 바로 ‘계란밥’이다.
프라이팬에서 살짝 익힌 계란 프라이를 밥 위에 얹고 간장만 휘휘 뿌려 쓱쓱 비비기만 하면 식사 준비 끝. 입맛에 따라 마가린을 넣거나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비벼 먹기도 하고, 장조림 국물이나 김칫국물과 섞어 김에 싸 먹어도 별미다. 그러나 중년의 이들에게 계란밥은 지금의 계란밥과는 사뭇 다른 조리법으로 기억되고 있다. 계란 프라이가 아닌 약간 비릿하면서 진하고 고소한 맛의 날계란밥에 대한, 아련하면서도 애틋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뜨끈한 쌀밥에 날계란 ‘추억의 맛’

추억의 계란밥 모습. 갓 지은 뜨거운 밥 위에 날계란을 얹고 간장 등을 넣어 비벼 먹었다.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계란은 꽤 귀한 식재료로 인식되었다. 당시 양계 산업은 현대적 시스템을 막 갖추기 시작할 즈음이라 수요에 비해 공급이 채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닭요리도 특별한 날에 가족이 함께 공유하던 음식이었고, 계란 또한 귀한 식재료로 대접받던 시절이었다.

집안 어른이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가끔 학부모에게서 계란 꾸러미를 선물 받아 오시곤 했다. 집에 풀어놓은 암탉이 산란한 것인데, 계란 10개를 볏짚으로 정성스럽게 싸맨 꾸러미였다. 이런저런 감사의 마음을 계란으로 전달했던 것.

이 계란으로 우리 3남매는 어머니에서게 계란밥 한 그릇씩을 받아 드는 호사를 누렸다. 어머니는 갓 지은 뜨거운 밥을 주발에 넉넉히 담고, 밥 윗부분을 숟가락으로 오목하니 파서 날계란을 넣고 다시 밥을 덮어 우리에게 건네셨다.

일각이 여삼추. 날계란의 흰자가 하얗게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각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들고 지루했던 기억이었다. 이제 먹으라는 말씀과 함께 간장 몇 숟가락 두르고 계란밥을 비빈다.

금세 고소한 계란 노른자 냄새가 밥 위로 진동을 하고 흰자는 적당히 익어 부드럽게 밥과 한 몸이 되었다. 날계란에 비벼 따끈하면서도 노랗게 물든 계란밥은 몇 번 씹지 않아도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고소하면서도 부드럽고, 짭조름하면서도 그 뒷맛은 담박했다.

이 계란밥을 크게 한 숟가락 푸고, 그 위에 분홍빛 소시지구이 어묵볶음 등을 고명으로 올리거나 잘 삭은 김치 이파리 넓게 걸쳐 먹으면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음식이 되었다. 겨우 날계란 한 알 깨뜨려 밥에 비볐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미의 끼니가 되었던지….

■한국과 일본 모두 즐겨 먹는 간단식

일본의 계란밥 ‘타마고카케고항’. 밥 위에 날계란을 올리고 쯔유 등 장류와 적당히 비벼먹는 것으로, 낫또를 토핑으로 얹었다.
인간에게 있어 계란은 오랜 식용의 역사를 지니는 식재료이다. 닭은 인간이 가장 널리 다량으로 사육하는 가금 중 하나이다. 주로 닭고기와 계란을 얻기 위해 사육을 하는데, 그 활용도에 따라 고기를 얻는 육계와 알을 얻는 산란계로 크게 나뉘고, 그 외 관상용과 닭싸움용인 투계 등으로도 분류가 된다.
닭은 기원전 1500년경 동남아시아 일대에 서식하던 ‘붉은 야생 닭(赤色野鷄)’을 가금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200억 마리 정도를 사육하고 있을 정도로, 소 돼지 양과 더불어 축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이 닭을 이용해서 고기는 튀기고 굽고 삶고 조리고 찌는 등으로 먹어왔고, 알 또한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었다. 특히 계란은 인간이 섭취해야 할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우유, 콩 등과 더불어 완전식품에 속한다. 조리가 간편하고 먹기 쉬워 남녀노소가 즐기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그중 한국과 일본은 이 계란으로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조리법이 발달했다. 한국은 ‘계란밥’으로 일본은 ‘타마고카케고항’으로 불리는 음식이다. 한국은 두 종류의 계란밥이 존재한다. 우선 프라이팬에서 살짝 구워낸 계란프라이로 비벼 먹는 방법과 날계란을 뜨거운 밥에 비벼 먹는 방법이 있다.

날계란과 밥을 비빈 계란밥 모습. 고소하면서도 부드럽고 짭쪼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다.
일본은 주로 아침에 날계란을 쇼유나 쯔유 등의 장류와 함께 적당히 비벼 먹는데, 입맛에 따라 다양한 토핑을 얹어 먹는다. 후리카케(밥 위에 뿌려 먹는 조미 가루),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 낫또, 치리멘(멸치 치어, 잔멸치), 토로로(갈아놓은 참마), 멘타이고(명란젓), 마요네즈 등인데 이를 따끈한 쌀밥 위에 날계란과 함께 휘적휘적 비벼 먹는 것이다.

양국의 닭 전래 역사는 한반도에는 기원전 1300여 년쯤에,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기원전 100년쯤에 전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계란을 식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란밥은 한일 양국 모두 근대에 이르러 상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양국은 근대에 이르러 양계 산업의 태동과 계란밥에 적합한 양조간장의 개발, 이에 따른 유통, 보급이 이뤄지면서 널리 먹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때부터 계란을 먹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소비는 메이지유신 이후이다. 당시 일본의 언론인이자 사업가인 ‘기시다 긴코’는 아침마다 ‘날계란밥’을 즐겨 먹었고 주위에 적극 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일 양국 모두 양계 산업이 크게 발전하기 전까지, 계란은 아주 귀한 식재료로 여겨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계란밥을 해 먹을 때, 계란 한 알로 한 식구가 나눠서 먹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던 것이 지금은 매일 밥상에 오르는 필수영양 섭취 음식으로 상용화된 것이 계란이다. 한국만 해도 2024년 기준 ‘식용란선별포장업장’을 거쳐 유통된 계란의 총 수량은 146억6800만 개로, 가공용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총 180억 개의 계란을 소비했다고 한다. 이를 국민 1인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연간 347.8개로 한 달에 하루이틀 정도 빼고는 매일 소비했을 정도의 수량이다.

한국과 일본은 오랜 시기를 걸쳐 계란밥을 즐겨 먹는데, 요즘 추세로 한국은 주로 프라이로 흰자를 익혀서 먹고 일본은 날계란 그대로를 먹는다. 이는 음식문화나 식습관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계란 유통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은 날계란을 공식적으로 바로 식용할 수 있도록 유통 과정을 운영한다. 그리고 날계란밥 전문 계란과 날계란밥 간장 등도 생산해 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다양한 조리에 쓰이는 다목적용 유통 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비린 맛을 싫어하는 한국의 요즘 MZ세대들의 입맛에서도 그 차이점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갓 푼 하얀 쌀밥 안에 날계란을 넣고 흰자가 살짝 익을 때쯤 살살 비벼 먹던 날계란밥의 그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는, 한국의 중년에게는 기껍고도 흔쾌하기 짝이 없는 추억의 음식이다. 요즘도 고소한 참기름을 곁들여 날계란밥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 걸 보면, 중년에게는 잊지 못할 소울푸드였을 법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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