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대표 식재료 열무
- 값싸고 활용도도 높아서
- 서민층이 사랑해온 채소

- 새콤한 열무물김치 담가
- 고추장 참기름 넣고 쓱쓱
- 꿀맛 열무비빔밥은 기본

- 여름 내내 먹고도 남아
- 푹푹 익어서 신 김치는
- 볶고 지지고 국으로도

요즘 날씨가 참으로 극성스러워졌다. 봄을 채 보내기 전인 6월 끝자락부터 시작된 더위가 7월 들어서는 불볕의 된더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위가 시작되면 문득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 있다. 본격적인 무더위에는 여러 복달임 음식이 생각나지만, 여름의 초입에는 심신을 잠시 식혀주는 ‘열무 음식’이 생각나는 것이다. 열무는 늦봄과 초여름을 대표하는 계절 식재료이기도 하거니와, 이 열무로 만든 음식 또한 봄과 여름을 지나며 사람 입맛을 돋우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무를 떠올릴 때마다 신록의 싱그러움이 풋풋해진다.

새콤한 열무김치로 만든 열무국수. 여름철 별미로 꼽히는 서민 음식이다. (왼쪽), 열무를 들기름에 볶은 열무 나물볶음.

■여름철 입맛 돋우는 식자재

한때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와 장마 기간을 즈음해 가장 유용한 채소가 열무였다. 이 기간에 성하게 자라는 채소이면서 가장 싼 값으로 서민들이 활용할 수 있어서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재배할 수 있고, 3~4주 정도 만에 빠르게 수확할 수 있어 더없는 채소이기도 했다.

잘 자란 열무는 잎줄기가 탱탱하고 수분이 많아 만지면 딱딱 부러질 정도로 싱싱하다. 이를 자작하게 김치로 담가놓으면 아삭아삭한 식감의 열무도 흔쾌하지만 새콤하면서도 시원하게 잘 익은 국물 또한 더위를 식히는데 참으로 좋다.

가난하던 시절, 서민들의 밥상에 늘 오르던 반찬 중 대표적인 것이 ‘열무김치’와 ‘열무물김치’였다. 이들은 여름내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소용되었다. 새콤하게 익은 이들 김치를 반찬으로 먹기도 했지만, 열무김치 송송 썰어 고추장 넉넉히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쓱쓱 비비면 더운 여름날, 꿀맛 같은 ‘열무 비빔밥’이 되었다.

밭에서 수확한 열무.

바깥일 보고 돌아온 어른들은 수돗가에서 등목 한 판 하고, 안사람이 내어준 시원한 ‘열무국수’ 한 그릇으로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우선 새콤한 열무 국물 한 모금 꿀떡꿀떡 들이켠 후 ‘후루룩~’ 한입 가득 국수를 빨아들이면, 국수의 감칠맛과 국물의 새콤함, 열무의 아삭거림이 어우러지며 온몸이 청량해지는 것이다.

중년의 세대들은 열무로 만든 음식에 얽힌 추억 한두 가지씩은 다들 가지고 있을 터이다. 특히 학창 시절, 버스를 타고 등하교하다 보면 만원 버스 속에서 늘 시큼한 열무김치 냄새가 진동했다. 몇몇 여학생들은 도시락 반찬으로 싸 온 열무김치 때문에, 좌석에 앉은 남학생이 가방을 들어주고자 해도 한사코 거절하는 촌극도 벌어지곤 했다.

매일 시금털털한 열무김치에 질려 불평도 많았지만, 우리네 어머니들은 빠듯한 살림살이 때문에 값싸고 양이 많은 제철 열무로 가족의 밥상을 차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 열무김치만 있으면 여러 음식을 요리조리 해 먹을 수가 있는 시절이기도 했다.

열무김치가 과하게 푹 익으면 볶아서 먹고 지져서 먹고 김칫국으로도 먹었다. 열무물김치로는 ‘열무 된장국’, ‘열무 비빔밥’의 재료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김치일 때는 그 풋풋함으로, 푹 삭혀진 김치로는 새콤하고 매콤한 맛을 살린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 왔던 것.■나물 지짐 된장찌개 등 다양한 요리

멸치육수에 된장과 열무김치를 넣고 지진 열무 지짐.

열무는 원래 ‘여린 무’란 뜻으로, 어린 무를 두고 일컬었던 말이다. 어린 무의 새순이다 보니 연하고 부드러운 맛과 아삭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이 열무는 봄이 농익을 무렵부터 초여름까지 열무 나물이나 열무김치, 열무 물김치 등의 식재료로 쓰인다. 요즘은 그 수요가 많아 사철 즐기는 음식으로 정착한 덕분에, 열무김치용 열무가 따로 재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설재배를 통해 사계절 생산되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부산 서대신동 시약산 자락에 조그마한 채소밭을 가꾸고 있는 터라, 철마다 신선한 채소를 수확해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요즘 한창 열무가 자라 눈이 시리도록 온 밭이 푸르다. 이 열무 중 솎아낸 어린 열무는 살짝 데쳐서 풋풋한 ‘열무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들기름에 달달 볶아 고소함이 일품인 ‘열무 나물볶음’으로도 먹는다. 잘 자란 놈들은 김치를 담그는데, 여름내 새콤하게 입맛을 살려주는 열무김치와 시원하게 몸을 식혀주는 열무 물김치를 만들어 먹는다.

이들은 계절 반찬으로도 훌륭하지만, 각종 여름 별식의 식재료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잘 익어 새콤한 열무김치를 쫑쫑쫑 썰어 대접에 밥 한 덩이 넣고 고추장, 참기름에 쓱쓱 비벼내면 ‘열무 비빔밥’이 된다.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비빈 열무 비빔밥.

열무 물김치 한 술로 입안을 다시고 열무 비빔밥 크게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매콤 들큼한 고추장, 새콤한 열무김치가 환상의 조합으로 어울린다. 게다가 씹을 때마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아주 기껍기도 하다.

열무김치가 심하게 삭으면 물에 설렁설렁 씻어서 색다른 여름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우선 씻은 열무김치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들기름에 달달 볶으면 고소하고 새콤한 ‘열무 볶음김치’가 된다. 또 하나의 열무 음식은 열무김치 지짐. 멸치 육수에 된장을 풀고 잘 씻은 열무김치와 함께 조려내듯 바글바글 오래 지져내면, 여름철 밥도둑 ‘열무김치 지짐’이 된다. 이들을 밥에 얹거나 찬물에 밥을 말아 척척 걸쳐 먹으면 무더위 속, 없는 입맛도 돌아오는 것이다.

열무 물김치는 또 어떤가? 잘 익은 열무 물김치는 차게 해서 국수에 말아 먹으면 더 이상 대적할 여름 별식은 없다. 새콤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에, 아삭한 열무의 식감이 제대로의 조합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과음한 다음 날 숙취 해소에도 큰 도움을 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이 열무 물김치는 냉면과도 잘 어울린다. 동치미 국물과는 또 다른, 열무 국물만의 새콤달콤한 맛이 매력적인 음식이다. 열무 물김치가 푹 삭으면 이를 김칫국이나 된장으로 끓여놓아도 묵은김치만의 깊은 맛이 흔쾌하게 다가온다.

열무에는 비타민C를 비롯해 무기질, 철분, 섬유질이 풍부해 여름철 대표 건강 식재료로 꼽힌다. 한때 서민 음식으로 우리네 여름 밥상에 빠지지 않았던 열무 음식. 지난 세대 우리 어른들은 이 열무 음식으로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던 것이다.

지금은 사철 내내 재배가 가능하기에, 여름 별식뿐만 아니라 연중 입맛을 돋우는 음식 재료로 거듭난 열무이다. 그러나저러나 요즘처럼 대책 없이 무더운 날, 잘 익은 열무 음식으로 싱그럽게 여름 한고비를 넘겨보는 것도 참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