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menu search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성공 뒤 불안…최민식 선배 대사가 날 울렸죠”

한국판 ‘인턴’ 한소희
정시우 객원기자 siwoorain@hanmail.net | 2026.09.22 19:1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엑스
- 패션계 입지전적 젊은 CEO ‘선우’
- 완벽 좇다 길 잃은 청춘들 자화상
- “영화 속 위로에 현실의 나도 성장”
- 지금은 ‘뼈말라’ 보다 건강 추구미

영화 ‘인턴’에서 패션 스타트업 대표로 변신한 배우 한소희가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에두르지 말자. ‘배우 한소희’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 도회적이고 시크한 이미지? 맞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불안함과 예민함이라는 단어도 한소희 얼굴에 포개져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할리우드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인턴’은 한소희가 지닌 이러한 기질이 극에 깊게 침투해 캐릭터 톤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케이스다. 한소희는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원작 주인공 줄스에겐 희미했던 ‘불안’이라는 감정을 앞으로 끄집어내 인물을 재해석했다.

‘인턴’은 37년 경력의 기호(최민식)가 은퇴 후 선우가 운영하는 패션 스타트업 ‘우투투(woo22)’에 실버 인턴으로 입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소희가 분한 선우는 창업 3년 만에 우투투를 매출 100억 원대 패션 브랜드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 그러나 성공을 위해 쉬지 않고 달린 나머지 일도 삶도 과부하에 빠진 상황이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의 불안과 자책에도 시달린다. 한소희는 젊은 여성 CEO가 겪는 불안에 자신이 걸어 온 배우 인생을 대입해 돌아봤다.

■대선배 최민식과 호흡

지난 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소희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완벽하지 않은” 선우가 자신을 닮았다고 고백했다. “선우는 실버 인턴 기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혼자 고군분투하며 회사를 이끌어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혼자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해서, 촬영하는 내내 ‘기호 같은 어른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불안감 사이에서 헤매는 선우처럼 나 역시 그 속에 뒤엉켜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때는 선우처럼 안 먹고 안 자고, 목표 하나 생기면 그것만 보고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는데, 나 자신을 조금 더 돌봐줬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무아지경으로 꿈만 쫓아가기보다 주위도 좀 둘러보고 했으면, 제가 늘 갖고 싶어 했던 여유라는 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래서일 것이다. 기호가 선우에게 건넨 말 한마디가 유독 한소희의 마음에 오래 머문 건. 한소희는 “‘잠이 보약이다’는 기호의 말에 선우의 마음이 열렸을 것”이라며 “일을 좇다 보면 잘 먹고 잘 자는 본질을 잊을 때가 많다. 늘 빠르게 컨펌하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잠부터 자라’고 말해줬을 때, 선우의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소희는 ‘인턴’에 참여하기 위해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원작의 앤 해서웨이처럼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미팅할 때마다 옷도 정성스레 차려입었다. 그 이유의 중심에 최민식이 있다. “최민식 선배가 먼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독님과 미팅을 한 건데, 솔직하게 말하면 ‘평생 살면서 언제 민식 선배님과 단둘이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단다.

한소희의 예상은 적중했다. 범 대중의 기억 속에 연기파 배우로 강렬하게 저장된 최민식 정도의 배우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물론, 동료 배우들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한소희는 그 광경을 ‘인턴’을 찍으면서 실제로 목격했다. “선배님은 현장에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연기를 잘하는 것 못지않게, 현장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도 배웠다”고 말했다.

대선배와 친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할머니 손에 자라서 또래보다 선배가 편하다”는 한소희는 “예의를 지나치게 갖추기보다는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만들며 최민식이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려고 졸졸 쫓아다녔다. 사실 첫인상은 무서웠는데 지금은 귀여운 소년 같으시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현장에서 쌓은 유대감은 연기로 이어져 화학작용을 낳았다. 영화 후반부 선우가 울면서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낼 때, 기호가 선우의 자존감을 끌어내기 위해 정신 바짝 들 정도로 매섭게 조언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여기서 한소희가 보여주는 놀란 표정은 연기가 맞지만, 100% 연기는 아니다. “‘너는 젊고 유능하니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기호의 조언을 들으면서 선우로서뿐만 아니라 한소희로서 많이 울었다”고 밝혔다. 이 장면은 지나친 자기 검열로 인해 자기 잘못이 아닌 일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 여성들에게도 적잖은 울림을 안긴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한 배우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최민식과 연기하며 한소희는 ‘좋은 어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란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삶의 기준점이 있을 텐데, 상대방의 기준점이 잘못됐다고 단정하면서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강요하는 건 조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한소희는 “보다 나은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되, 선택권은 결국 너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좋은 어른이 해줄 수 있는 말 같다”고 피력했다.

성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안 배우 한소희도 한층 숙성된 듯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한소희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했단다. “연기는 예술 카테고리에 있지만, 기술적으로 해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제 컨디션을 잘 조절해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주위 시선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 것도 한소희가 최근에 겪은 변화 중 하나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몸과 마음의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일까. 요즘 유행하는 (극도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일명 ‘뼈말라’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요즘 ‘뼈말라’를 추구하는 경향이 생기지 않았나”고 운을 띄운 한소희는 “저도 옛날엔 그냥 마르기만 하면 좋겠다 했는데, 30대 중반에 다가가다 보니까 결국 중요한 건 건강이더라. 마른 몸이 예쁜 것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먹을 쥐며 말했다.

한소희가 뼈말라 유행에 이토록 목소리를 높인 건, 그 자신도 급하게 살을 빼다가 진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다. “팬들과 라이브 방송을 할 때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국 죽을 때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죽는다. 모두가 건강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개봉한 ‘인턴’은 추석 한복판에서 ‘암살자(들)’ ‘타짜: 벨제붑의 노래’ ‘가능한 사랑’ 등과 경쟁한다. 쟁쟁한 작품들 속에서 관객을 사로잡을 ‘인턴’만의 매력은 뭘까. 한소희는 영화의 매력으로 “최민식 선배님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얼굴로.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던 최민식 선배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시우 객원기자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엑스
관련기사
국제신문 뉴스레터

[많이 본 뉴스]

[창간기획] 낙동강 하구 0.9℃의 경고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