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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자에게 에든버러가 말을 걸어왔다

에든버러=조봉권 선임기자 bgjoe@kookje.co.kr | 2026.09.1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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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성에서 굽어본 성 안팎 풍경. 성안에 있는 건물은 고색창연했고, 성 바깥 도시 조망은 시원했다. 조봉권 선임기자
- 연 1300만 관광객 찾는 이유?
- 풍요로운 문화예술·중세풍 낭만
-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지만
- 그 중 최고는 ‘친절과 환대’였네

에든버러 도심에 자리한 ‘내셔널 갤러리즈 오브 스코틀랜드: 내셔널’에서 관람객이 그림을 즐기고 있다. 조봉권 선임기자
암체어북스는 번화가 그래스마켓에 있는 헌책방이다. 여기서 책을 두 권 샀다. 책을 읽던 젊은 여성 점원은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으며 “Oh! Great” 하며 계산해 주었다. ‘이게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을 만큼 그 점원은 친절했다.

유명한 의학박물관 서전스홀(Surgeon’s Hall) 근처 작은 베트남식당에서 밥을 먹고 트래블월렛 카드(여행자용 직불카드)를 단말기에 탭(tap·살짝 갖다 댐)하자 금세 결제가 됐다. 카운터를 지키던 스코틀랜드 소녀는 “Perfect!” 하고 칭찬하며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흐뭇해지면서도 ‘이게 그렇게까지 잘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이런 식이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취재 차 지난달 24일~지난 1일 사이 머문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만난 이 도시 사람들은 친절했다.

시내버스 기사들은 대체로 모든 승객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거나 받아주었다. 인종이나 문화에 관한 편견도 별로 없어 보였다. 에든버러 박물관(Museum of Edinburgh)에는 ‘우리 도시 게이·레즈비언 역사와 문화’를 정식으로 풍부하게 전시해 두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중심지 로열 마일의 민중 이야기 박물관(People’ s Stroy Museum)과 에든버러 박물관을 둘러보고 기진맥진해 야외 벤치에 앉아 쉬는데 퇴역 군인이 아닐까 싶은 강인한 인상의 옆 벤치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주민인 그가 들려준 정보는 훌륭했다.

“근처에 내셔널 갤러리즈 오브 스코틀랜드 모던 원과 모던 투가 각각 있다. 정말 멋진 현대미술관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소다. 꼭 가보시라!” 그렇게 내 고장 자랑에 열을 올리던 그가 문득 말을 멈추고 물어왔다. “Am I speaking too fast?” (내 말이 너무 빠른가?) 외국인인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혹시 자기 말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그에게서 친절을 느꼈다.

그의 설명대로 ‘내셔널 갤러리즈 오브 스코틀랜드: 모던 원’은 구성이 정말 좋았다. 신생아를 거대하게 표현한 론 뮤익(Ron Mueck)의 유명한 조형 작품 ‘A Girl’을 비롯해 잊히지 않을 작품을 꽤 만났다. 뮤지엄숍에는 ‘Make Break Remix: The Rise of K-Style’(피오나 배 지음)이라는 한류 문화 책도 있었다. 시간이 모자라 ‘모던 투’에 못 간 건 내내 아쉽다.

내셔널 갤러리즈 오브 스코틀랜드에는 ‘모던 원’과 ‘모던 투’ 말고도 ‘내셔널’과 ‘포트레이트’도 속해 있고, 이 모두 에든버러 시내에 있다. 인물화 전문 ‘포트레이트’에는 못 가고 말았지만, 접근성 탁월한 ‘내셔널’에서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노럼성, 해돋이(Norham Castle, Sunrise)’ 등을 직접 보니 황홀했다.


◇ ‘스코틀랜드의 심장’ 에든버러성…조망이 압권인 중세 성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전시실 모습. 문명 발전에 기여한 스코틀랜드인의 자부심이 스며 있다. 조봉권 선임기자
이 사람들은 왜 친절한가? 왜 편견이 적어 보일까? 이건 관광 도시·여행자 천국을 지향하는 부산도 배울 덕목 아닌가? 에든버러에서 이 주제에 꽂히고 말았다. 그 실마리를 풀려면 에든버러성(城)부터 가야 했다. 출국 전 온라인으로 예약한 에든버러성 가이드 투어(30파운드·약 5만5000원)와 가이드북(6파운드)을 떠올렸다. 여행을 준비하며 큰 서점에 가서 단행본으로 나온 스코틀랜드·에든버러 관련 여행·문화·역사 책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좀체 안 보였다. 있어도 절판됐거나, 재고가 없었다. 에든버러와 스코틀랜드는 ‘낯설지는 않지만, 막상 우리가 거의 모르는 세상’으로 다가왔다. 그런 에든버러의 역사·문화를 느끼려면 먼저 갈 곳이 에든버러성이었다.

에든버러성은 조망이 좋다. 도심·근교·올드 타운·뉴 타운 어딜 가든 에든버러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중세 도시 분위기를 느꼈다. 현대 건물이 있어도 중세풍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화가 이뤄졌다. 초고층 건물·전망대는 없다.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옥상에 가꾼 공중정원이 소담하고 아름다웠는데 저 멀리 에든버러성이 잘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낮다. 에든버러 조망은 에든버러성이 최고였다.

에든버러성 공식 가이드 투어는 영어로 30분간 진행됐고 알찼다.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객을 대상으로 공인된 정보를 전하는 해설이니 영어 표현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이 투어를 통해 역사·문화·상업·예술 도시로서 에든버러의 중요한 기억과 유산은 어떻게든 에든버러성과 연결돼 있다는 확신이 섰다. 이 성의 별칭은 ‘스코틀랜드의 심장’이다. 1861년부터 선박을 위한 시보로 시작한 ‘1시 대포(The One O’ Clock Gun)’, 유서 깊은 성 마가릿 예배당, 1449년 제임스 2세 왕 결혼 예물로 만든 사연 많은 초대형 대포 몽스 멕(Mons Meg) 등 성 구석구석 모든 곳에 스코틀랜드 사람의 패배와 승리, 에든버러 시민의 한과 기쁨이 켜켜이 쌓여 있다.


◇월터 스콧·해리 포터 ‘문학의 도시’…부산이 배울 만한 ‘환대의 도시’

문학인에게 헌정된 기념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스콧 기념탑(Scott Monument). 조봉권 선임기자
문학을 사랑하는 여행자도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질 만했다. 높이 60m 스콧 기념탑(Scott Monument)은 대문호 월터 스콧을 기려 1844년 완공했다. 문학인에게 헌정한 기념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18세기 뉴 타운을 건설할 때 나온 폐자재를 쌓아 조성한 인공 언덕인 마운드(the Mound)에서는 야구용어 마운드의 어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운드에는 작가 박물관(Writers’ Museum)이 있다. 월터 스콧,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썼다), 로버트 번스를 기리는 예쁜 박물관이다.

조앤 롤링이 ‘해리 포터’에 관한 영감을 얻고 집필을 이어간 도시도 에든버러다. 시내에는 공식 해리 포터 기념품 판매점이 여행객을 유혹했다. 역사가 길고 사연이 많은 에든버러에는 종류별로 명소가 무척 많아 각자 취향에 맞는 여행법을 택하면 된다.

번화가 그래스마켓에서 만난 ‘암체어북스’ 등 헌책방들. 조봉권 선임기자
이 도시의 친절과 편견 적음은 어디서 왔을까. 그 비결은 ‘실용의 정신과 열린 마음’에 있는 듯했다. 스코틀랜드 수도로서 잉글랜드와 피 터지는 쟁패를 펼친 역사를 통해, 고리타분한 관념에 갇히지 않는 실질·실용의 세계관을 이들은 장착한 듯했다. 바다를 낀 큰 항구도시로서 흑사병을 혹독하게 겪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교류 중심이자 열린 도시였다.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에 이미 관광산업 급팽창을 경험했다. 에든버러를 찾는 관광객은 1년 약 1300만 명이라고 2024년 발행된 책자에 나온다.

문화·예술도 중요했다. 1947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출범할 때 거기 끼지 못한 8개 극단이 근처에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펼치자, 이 도시는 두 축제를 첫해부터 함께 열었다. 그렇게 시작해 수많은 예술 축제가 생겼다. 온 세계에서 달려오는 이들 축제를 통해 에든버러 사람들은 열린 마음으로 환대하고, 편견을 갖지 않는 성숙한 태도가 소중함을 깨우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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