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위기의 터널 넘어 해양강국 재도약하자 /문창용
해운·조선업 위기 직면…中·日과 경쟁력 강화할 해양금융·선박회사 등 육성 정책과 투자 절실 |
돌이켜 보면 1970년대부터 전 세계 상선대(商船隊)를 휩쓸던 대한민국 해운 인력은 끈기와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고유의 DNA를 바탕으로 세계 유수의 선주와 선사들로부터 주목받았고, 한국 선원을 고용하기 위해 고임금을 보장하는 등 인기가 치솟았다. 해운산업은 그 시절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고 생산유발과 고용창출까지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발돋움했다.
세계를 호령했고 국가 경제의 든든한 기반이었던 해운산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세계 5위권의 항만인 부산항과 세계 최고라 자부하던 조선산업도 경쟁국 정부의 전략적인 육성정책과 해당 기업의 미래지향적인 투자로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상하이-닝보로 이어지는 항만·물류허브를 조성했고,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통한 저가 수주로 한때 조선소를 3000개까지 확장했다. 정부의 전폭적인 금융 및 세제지원과 뛰어난 기술력까지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화주들과 해운사, 조선소,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자국 금융회사를 통해 자국 내 순환을 통한 상호 지원을 하는 등 유기적으로 해운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이다. 조선산업도 국제 간 경쟁심화, 글로벌 해운시황의 악화로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사는 수주절벽에 따른 수익 악화, 주가 하락 등으로 현재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이는 해운·조선산업 클러스터인 영남권의 경제를 붕괴시킬 수 있다.
세계 10대 무역 강국인 우리에게 생명줄과 같은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해운·조선산업의 악화는 지역 경제, 더 나아가 국가 경제에 크나큰 위기를 초래한다. 하지만 해결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해결책은 '해양금융' 확대이다. 해양금융은 해운사와 조선사에 대한 안정적인 자본조달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한다.
세계 경기 상황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경기 순환적 성격과 외화 거래가 기본이 되는 해운산업 특성상 국내 해운사의 자금조달 여건이 불리한 탓에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은 경쟁력 강화에 큰 요소로 작용한다.
세계 각국 정부 또한 해양금융을 통한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자국 기업 경쟁력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세제 혜택이나 지급보증 등을 통해 해운산업에 대한 지원과 보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0월 말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문선주회사 육성, 선박 신조지원 확대, 선박펀드 확대 등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우선 국내 선사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이달 중 설립 예정인 한국선박회사(가칭)는 재무 상황이 어려운 선사의 배를 사실상 구매 당시 가격으로 사주고 사들인 배를 해당 선사에 빌려주는 식으로 선사를 돕게 된다. 또 초대형·에코십 컨테이너 등을 발주해 해운사에게 빌려주는 선박 신조 프로그램은 지원금액을 종전의 12억 달러에서 24억 달러로 확대해 해운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선박을 운용하도록 지원한다.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선박펀드도 지난해보다 규모를 확대해 민간과 매년 50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선박 인수를 통해 해운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의 해양금융 확대 정책은 정책자금과 민간자금의 컨소시엄을 통해 경쟁력 있는 선박을 발주해 조선소를 지원하고 발주가 완료된 선박을 다시 해운사에 빌려주는 등 산업 전반에 선순환적인 지원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정책 수행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해운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국민은 정부를 믿어주고 정책금융기관은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책임을 다해 우리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국가적인 위기상황을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곧 기회로 승화(以患爲利)' 시킬 수 있다.
우리는 스웨덴의 조선업 붕괴의 대명사인 '말뫼의 눈물'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조선소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려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을 눈물 짓게 했던 기업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현대중공업이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지금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하고 전 국가적인 역량을 모아 다가오는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해양강국으로 재도약하는 그 날까지 지금의 눈물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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