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컴퓨터는 결코 바둑을 인간처럼 둘 수 없다는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알파고의 예에서 보듯이 AI의 발전속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AI는 기존의 데이터를 입력하여 처리할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여러 데이터를 이용해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하도록 인공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계 학습인 딥 러닝의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딥 러닝 기술을 적용하면 사람이 모든 판단 기준을 정해주지 않아도 컴퓨터가 스스로 인지·추론·판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AI를 사법작용에 적용할 수 있을까. 사법작용이 판단 작용이기는 하지만 이때까지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AI의 딥 러닝 기술을 적용하면 가능하다고도 보인다. 즉, AI는 헌법이 무엇이고 법률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데이터를 짧은 시간에 정확하게 분석하여 그 결과를 출력해 낼 것이다. 그렇지만 AI도 사람을 쫓아갈 수 없는 부분이 있을 터인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인간이 가지는 양심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서 헌법과 법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사실관계에 적용되는지에 대하여는 AI가 사람보다 더 많은 데이터로 더 정확하게 분석해 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양심은 AI가 따라올 수 없는 사람의 고유영역일 것이다. 그 때문에 결국 사람인 법관이 재판을 하는 것이 AI보다 더 낫다고 생각되고 그 판결의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리라. 헌법이 말하는 양심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공정하고 편파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여러 사건을 보면 과연 법원이 양심에 의한 공정하고 균형 있는 재판을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든다. 법원이 법적으로 뇌물에 해당하는 향응을 받았다는 판사에 대하여 형사적 처벌은커녕 내부의 어떠한 징계도 없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에서 작성된 문화계의 블랙리스트를 심판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였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는 사건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비록 개개인의 법관이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고 하더라도 법원 전체로 봐서는 어느 누구도 재판이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된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최근에는 속칭 ‘몰래카메라’를 촬영하였다는 의심을 받아 수사대상이 된 판사도 있는데 그 판사가 성범죄 재판도 한다니 법원의 양심에 대한 믿음이 그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황인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는 외면하고 타인의 잘못만을 단죄한다면 이는 양심이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AI보다도 못한 법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잘못을 사과하고 반성하지 않는 조직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법원은 조직 구성원의 개인적인 일탈에 대하여 사과한 적은 있어도 조직 내부의 일이나 법원 본연의 임무인 재판이 잘못되었을 경우 사과하거나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 계속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법원은 재판을 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 죄의 유무와 처벌의 정도를 정하기에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높은 정도의 도덕성이 필요하다. 그러한 도덕성에 바탕을 두어야 그 판단에 대하여 승복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판단한다면 차라리 AI에게 재판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현행법에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는 국민참여 재판을 받을지를 피고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만약, AI에게 재판을 받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법관보다 차라리 AI에게 재판을 받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다고? 이 글을 쓰는 나부터도 판사보다는 AI에게 재판을 받았더라면 결론이 어땠을까 하는 몇몇 사건이 머릿속을 빙빙 맴돈다.
변호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