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에 출간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한 미국 최초의 판타지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은 캔자스 농촌 마을의 10대 소녀 도로시이다. 도로시는 어느 날 갑자기 토네이도(회오리 바람과 유사)에 휩쓸려 날아가다 마법의 나라 오즈에 떨어진다. 도로시가 살던 통나무집이 통째로 날아가서 떨어졌는데, 집 안에 있던 도로시는 무사했지만, 떨어진 통나무집에 오즈의 동쪽 영역을 통치하던 나쁜 동쪽 마녀가 깔린 채 죽어 있었다. 이후 도로시는 오즈의 대마법사를 찾아가서 고향 캔자스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하지만, 대마법사는 서쪽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또 한 명의 나쁜 서쪽 마녀를 죽이면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간계로 도로시를 꼬드긴다.

‘오즈의 마법사’가 출간된 지 100여 년 만에, 그 프리퀄(기존 작품의 시간대보다 과거의 사건을 다룸으로써 기존 작품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 격인 소설 ‘위키드(Wicked·사악한)’가 출간, 100여 년 동안 기억되어 온 이야기에 급반전 상상력을 제공한다. ‘위키드’는 특히 뮤지컬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위키드’가 제안한 상상의 반전은 다음과 같다. 서쪽 마녀가 애초부터 나쁜 마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서쪽 마녀의 이름은 엘파바이고, 초록색의 피부를 갖고 태어나 따돌림을 받고 성장했으며, 외형만 다르지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아 사실상 인간과 차이가 없는 동물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일삼는 오즈 나라의 관행과 제도에 항거하는 세력에 가담했다. 단지 약자를 대변하는 목소리만을 높였다면 소수의견으로만 기억됐겠지만, 엘파바는 뛰어난 마법 능력으로 저항세력의 상징이 되어 갔다. 오즈의 지배세력은 엘파바가 그들의 통치에 대한 실질적 위협으로 성장해가자 그녀를 악마화했고, 결국 서쪽의 사악한 마녀가 되어 버린 엘파바는 권선징악의 구도 속에서 다른 세상에서 와 영문을 모르는 도로시에 의해 종말을 맞는다. ‘위키드’의 저자가 제공한 상상을 받아들인다면, 진정 사악했던 것은 마법 나라 오즈의 지배세력이었고, 서쪽 마녀 엘파바와 캔자스 소녀 도로시는 악마화와 차도살인이라는 간계에 휘말린 희생양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순진한 자신의 아내가 악마화되었다고 했다. 대통령의 부인이 어떻게 악마화되었다고 생각하는지,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그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허위 또는 과장된 학력과 경력으로 각종 증명서를 화려하게 꾸몄을 뿐인데, 학력이나 경력을 속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사실대로 적으며 살아온 대다수 국민이 억울해서 영부인을 악마화했다는 것인가? 순진해서 주가 조작범에게 속아 통장도 빌려주고 매수 지시도 하고 뜻밖의 23억 원 이득까지 본 영부인을, 통장을 빌려주기는커녕 주가 조작범을 만나 본 적도 없는 대다수 국민이 시기해서 악마화했다는 것인가? 10여 명의 경호원을 대동했음에도 명품상점 점원의 호객행위에 걸려 저항도 못 해보고 상점 안으로 끌려들어 간 영부인을, 리투아니아 명품상점 근처에도 못 가본 절대다수 국민이 질투해서 악마화했다는 것인가? 명품백 사진을 미리 전송해 보여주고, 조사하러 온 검사들의 휴대전화도 압수하는 삼엄한 경호마저도 경이롭게 뚫어버린 함정용 명품백을 성품이 박절하지 못해서 받아버린 영부인을, 명품백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 절대다수 공무원의 배우자들이 배알이 꼴려 악마화했다는 것인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는 무지개 너머(Over the Rainbow) 꿈에 그리던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 날에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그날 무지개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무지개 너머에 어떤 세상이 있기를 바랐을까? 대통령이 자신이 활약했던 과거의 특검은 헌법의 수호자였고 현재 자기 아내를 수사하려는 특검은 헌법의 파괴자라고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부인의 의혹을 규명하라고 외치는 집회를 헌정질서파괴행위라고 비난하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의 부인이 헌법과 동격화 되어 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는 세상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 왕비도 안 그랬다. 무지개가 뜨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