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9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677조 원 규모의 정부안 중 4조1000억 원을 감액하고 증액은 없는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이에 따라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2일 국회 본회의에 내년도 예산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예결위는 대통령실 검찰 경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761억 원을 전액 삭감했다. 4조8000억 원 규모의 예비비는 절반을 줄였다. 예결위에서 예산안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여야가 그동안 나라 살림인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은 것은 민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운데)가 1일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민주당은 증빙 자료 없는 특활비와 특경비를 동의할 수 없었다고 감액 배경을 설명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조 원대 규모로 집행된 예비비를 정부가 명확한 근거 없이 대폭 늘린 것도 문제로 삼았다. 정부안을 심의 없이 본회의에 자동부의하게 둘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법을 내세우니 국회의 다수당에 부여된 헌법상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논리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기에 속수무책이다. 역시 감정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벌이는 인질극”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분풀이식 삭감” “나라를 끝장내고 있다”는 식이다. 여당다운 차분함과 대안 제시는 미흡하다. 정부 역시 국회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 야당이 특활·특경비에 증빙자료를 요구했을 때 시간을 끌다가 막상 삭감되니 뒤늦게 자료를 제출하며 뒷북을 쳤다. 여야 대치의 배경에 김건희 여사와 이재명 대표 사법리스크를 축으로 한 힘겨루기가 깔렸다. 합의 처리의 여지는 남아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사상 첫 야당 단독 처리 예산심의안의 본회의 부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1일 여야 원내대표 만찬을 제의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지역과 관련된 예산의 증액이 반영되지 않아 야당 지역구 의원들도 불만이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이날 이철우 경북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수정안을 내면 협의하겠다고 했다. 진지하게 논의하면 길이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경제는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하락하는 ‘트리플 쇼크’ 상태다. 내수가 무너진 지는 오래고,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 역시 하향세가 예상돼 미래가 암울하다. 내년 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 보호무역의 파고가 한국 경제를 강타할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0인 이상 기업 239개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을 대상으로 ‘2025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를 했더니 절반이 내년 긴축 경영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여야가 도탄에 빠진 민생을 서둘러 챙겨도 아쉬울 판에 정쟁에 매달린 꼴이다. 정치권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싸울 때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민생 회복을 최우선으로 한 경쟁에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