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IMF 외환 위기 때 사회 어느 영역 못지 않게 직격탄을 맞은 분야가 방송가였다. 아무리 TV라도 웃고 떠들 상황이 아니라는 정서가 모두를 짓눌렀다. 급기야 한국방송협회는 공중파 3사의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을 각 한편씩 폐지하기로 합의한다. 화려한 웨딩숍을 배경으로 청춘 남녀 사랑을 그린 주말극 ‘웨딩드레스’는 “사치스럽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했고, 대신 1960년대 홀어머니 가정을 다룬 ‘육남매’ 같은 드라마가 편성됐다. 가요프로그램도 대폭 줄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IMF라곤 해도 댄스가수가 춤을 다르게 출 수는 없지 않나요.” 당시 데뷔 4년차 가수였던 프로듀서 박진영이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우리는 불과 2년 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현듯 일상이 무너지는 공포를 겪었다. 팬데믹 초기 한 공기업 임원은 출근길에 직원 중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폐쇄된 건물 주차장에서 몇시간을 대기해야 했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행여 확진자와 접촉한 동선이 드러나기라도 하면 ‘부산 ○번’이라고 낙인이 찍힐 판이었다. 가족과 밥 먹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직장 동료들과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 푸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 빼앗겨 보니 알겠더라는 자성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12·3 비상계엄’에 이은 ‘대통령 탄핵소추’로 안 그래도 냉랭한 연말연시 경기가 더 얼어붙고 있다. 집단 우울감에 빠져 송년회 동창회 같은 모임마저 취소가 잇따른다는 소식이다. 오죽하면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서 “취소한 송년회 재개를 당부드린다”고 호소할 정도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임과 행사를 계속하시라” 부탁하고, 금융권에는 “본사와 영업점의 송년회 등은 예정대로 시행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Keep Calm and Carry On’.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부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표어다. ‘진정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조지 6세 국왕은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정사를 돌보고, 처칠 수상은 노출 위험을 무릅쓰고 다우닝 가와 버킹엄 궁을 오갔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역시 12월이었다. 그때도 소비 위축이 있었지만 심각한 침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국가 수반의 탄핵 위기가 결코 사소한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암울해질 이유는 더더욱 없다. 가수는 노래하고 개그맨은 개그하듯, 각자 역할을 하는 게 자신과 모두를 지키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12·3 비상계엄’에 이은 ‘대통령 탄핵소추’로 안 그래도 냉랭한 연말연시 경기가 더 얼어붙고 있다. 집단 우울감에 빠져 송년회 동창회 같은 모임마저 취소가 잇따른다는 소식이다. 오죽하면 우원식 국회의장이 나서 “취소한 송년회 재개를 당부드린다”고 호소할 정도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임과 행사를 계속하시라” 부탁하고, 금융권에는 “본사와 영업점의 송년회 등은 예정대로 시행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Keep Calm and Carry On’.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정부가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표어다. ‘진정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조지 6세 국왕은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정사를 돌보고, 처칠 수상은 노출 위험을 무릅쓰고 다우닝 가와 버킹엄 궁을 오갔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역시 12월이었다. 그때도 소비 위축이 있었지만 심각한 침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국가 수반의 탄핵 위기가 결코 사소한 일일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 전체가 암울해질 이유는 더더욱 없다. 가수는 노래하고 개그맨은 개그하듯, 각자 역할을 하는 게 자신과 모두를 지키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방법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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