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뱀띠해의 부산
기장선 뱀을 ‘업신’ 대우, 동래 등엔 뱀 보은설화도부산의 기념비적인 일은 뱀의 해에 많이 일어나
류승훈 부산근현대역사관 운영팀장
어느새 갑진년(甲辰年)이 저물고 2025년 설날을 맞은 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이다. 명리학에서 보면, 을사년의 ‘을(乙)’은 나무를 가리키고, 색깔은 푸른색에 해당한다. 그래서 을사년을 ‘푸른 뱀’의 해로 부른다. 올해는 뱀띠 사람에게는 특별한 해가 되겠지만 특히 을사년 생은 환갑을 맞으니 더 각별할 것이다. 을사년을 맞아 부산에서 뱀과 관련된 문화를 찾아보고 뱀띠해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뱀은 두렵고 겁나는 동물이다. TV에서 뱀이 나와도 기겁하거나, 뱀을 만지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바라보게 된다. 혀를 날름거리며 긴 몸을 꿈틀거리는 생김새도 비호감이지만 독니를 드러내고 꼬리를 곧추세워 흔드는 모습은 가히 위협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뱀을 꺼리는 전통적 관습이 널리 퍼져 있다. 예컨대, 정초의 뱀 날(상사일)에는 머리를 빗지 않는 관습이 있는데 혹여 뱀이 집으로 들어와 화를 입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뱀이 집으로 들어오면 3년 운수가 나쁘거나 우물 속에 뱀이 있으면 해롭다고 여기는 관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면 뱀을 보는 사람의 문화적 시선이 이중적임을 알게 된다. 뱀은 두려운 동물이지만 한편으로 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귀한 동물이었다. 뱀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거나 뱀을 보면 돈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기장군에서는 구렁이와 같은 뱀을 ‘업신(業神)’으로 생각하고, 정월에 업신을 ‘업장군’이라 부르며 모시는 풍속이 전해졌다. 기장군 주부들은 정초에 업신이 산다고 여기는 고방에 상을 차려놓고 복과 재물을 달라고 비손을 했다. 구렁이를 업신으로 대우했으므로 갑자기 구렁이가 집에서 나가면 재복(財福)도 함께 사라져 불길한 일로 생각했다. 한편, 꿈에 뱀이 나타나면 태몽으로 여겼다. 뱀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면 아이를 배는 길몽으로 보았다. 구렁이에게 물리는 태몽을 꾸면 큰 인물이 될 아이를 낳는다고 예견하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뱀 관련 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동래구 온천동과 복천동에서 전승되는 ‘은혜 갚은 뱀’의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서당에 다니는 아이가 어느 날 배고픈 실뱀을 보고, 점심으로 싸 온 밥을 조금씩 나눠줬다. 아이가 준 밥을 먹고 실뱀은 어느덧 큰 뱀으로 자라났고, 아이도 강 건너 마을로 장가를 가게 됐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뱀이 헤엄쳐 따라오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아이는 초례를 지내고 신방에서 첫날밤을 보내려는 순간,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나가보니 한 사람이 죽어있는데, 다름 아닌 신부와 정을 통했던 간부(姦夫)였다. 아이를 해치기 위해서 몰래 담을 넘으려고 하자 뱀이 이 간부를 물어 죽여 은혜를 갚은 것이다.뱀은 자신을 해치거나 밟지 않는다면 사람을 멀리 피해 가는 습성이 있다. 뱀이 공격적으로 변할 때는 누군가의 공격이 먼저 있거나 먹이를 사냥해야 하기 때문이다. 뱀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을 신성시하거나 신의 뜻을 전달해주는 메신저로 보았다. 부산 강서구 흥국사에서는 뱀이 조각된 석탑의 부재가 발견된 적이 있다. 이를 ‘사왕석(蛇王石)’이라고 한다. 흥국사는 명월사 옛터로 추정된 곳에 다시 건립한 사찰이다. 아마도 이것은 명월사 시절에 세운 석탑을 장식했던 조각돌로 보인다. 이 돌 가운데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양쪽에 구불구불한 모습의 뱀이 조각되어 있다. 부처님을 수호하는 이 뱀을 ‘사왕(蛇王)’으로 부르는데, 인도에서도 사왕 조각물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이 석재를 가락국과 인도가 교류한 문화적 상징물로 보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뱀의 해에 부산은 과도기를 통과하거나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1953년(계사년)에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수도가 서울로 환도하는 바람에 임시수도였던 부산은 혼란기를 맞았다. 부산은 잔류한 피란민들을 보듬으며 대한민국의 거친 현대사가 남긴 과제를 해결해야 했으니 또 다른 시작을 맞았던 셈이다. 1965년(을사년)은 부산에 다양한 향토 기업들이 탄생하면서 경제 성장의 뿌리를 본격적으로 내린 해였다. 1989년(기사년)은 부산에 민주화 바람이 크게 일었다. 언론통폐합 시에 폐간되었던 국제신문이 복간된 것도 1989년이었다. 인내심이 강하고 꾀를 잘 쓴 뱀은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하는 ‘과정의 동물’로 여겨진다. 뱀은 군사 전략에서도 활용된다. 임진왜란 때 뱀의 빠른 움직임을 활용한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은 해역이 좁은 부산포에서 승리하기 위해 ‘장사진(長蛇陣)’ 전략을 썼다. 뱀의 움직임을 잘 활용한 이순신 또한 1545년(을사년) 뱀띠생이다. 총명한 지략을 갖추고 부산 바다에서 용감히 싸운 뱀띠 인물이 없었다면 조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뱀은 두렵고 겁나는 동물이다. TV에서 뱀이 나와도 기겁하거나, 뱀을 만지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바라보게 된다. 혀를 날름거리며 긴 몸을 꿈틀거리는 생김새도 비호감이지만 독니를 드러내고 꼬리를 곧추세워 흔드는 모습은 가히 위협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뱀을 꺼리는 전통적 관습이 널리 퍼져 있다. 예컨대, 정초의 뱀 날(상사일)에는 머리를 빗지 않는 관습이 있는데 혹여 뱀이 집으로 들어와 화를 입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뱀이 집으로 들어오면 3년 운수가 나쁘거나 우물 속에 뱀이 있으면 해롭다고 여기는 관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살펴보면 뱀을 보는 사람의 문화적 시선이 이중적임을 알게 된다. 뱀은 두려운 동물이지만 한편으로 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귀한 동물이었다. 뱀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거나 뱀을 보면 돈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기장군에서는 구렁이와 같은 뱀을 ‘업신(業神)’으로 생각하고, 정월에 업신을 ‘업장군’이라 부르며 모시는 풍속이 전해졌다. 기장군 주부들은 정초에 업신이 산다고 여기는 고방에 상을 차려놓고 복과 재물을 달라고 비손을 했다. 구렁이를 업신으로 대우했으므로 갑자기 구렁이가 집에서 나가면 재복(財福)도 함께 사라져 불길한 일로 생각했다. 한편, 꿈에 뱀이 나타나면 태몽으로 여겼다. 뱀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면 아이를 배는 길몽으로 보았다. 구렁이에게 물리는 태몽을 꾸면 큰 인물이 될 아이를 낳는다고 예견하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뱀 관련 설화가 여럿 전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동래구 온천동과 복천동에서 전승되는 ‘은혜 갚은 뱀’의 이야기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서당에 다니는 아이가 어느 날 배고픈 실뱀을 보고, 점심으로 싸 온 밥을 조금씩 나눠줬다. 아이가 준 밥을 먹고 실뱀은 어느덧 큰 뱀으로 자라났고, 아이도 강 건너 마을로 장가를 가게 됐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뱀이 헤엄쳐 따라오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아이는 초례를 지내고 신방에서 첫날밤을 보내려는 순간,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나가보니 한 사람이 죽어있는데, 다름 아닌 신부와 정을 통했던 간부(姦夫)였다. 아이를 해치기 위해서 몰래 담을 넘으려고 하자 뱀이 이 간부를 물어 죽여 은혜를 갚은 것이다.뱀은 자신을 해치거나 밟지 않는다면 사람을 멀리 피해 가는 습성이 있다. 뱀이 공격적으로 변할 때는 누군가의 공격이 먼저 있거나 먹이를 사냥해야 하기 때문이다. 뱀은 환경에 잘 적응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뱀을 신성시하거나 신의 뜻을 전달해주는 메신저로 보았다. 부산 강서구 흥국사에서는 뱀이 조각된 석탑의 부재가 발견된 적이 있다. 이를 ‘사왕석(蛇王石)’이라고 한다. 흥국사는 명월사 옛터로 추정된 곳에 다시 건립한 사찰이다. 아마도 이것은 명월사 시절에 세운 석탑을 장식했던 조각돌로 보인다. 이 돌 가운데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양쪽에 구불구불한 모습의 뱀이 조각되어 있다. 부처님을 수호하는 이 뱀을 ‘사왕(蛇王)’으로 부르는데, 인도에서도 사왕 조각물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이 석재를 가락국과 인도가 교류한 문화적 상징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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