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이후 우리 사회는 전례없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다. 깊어지는 경제침체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대외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안팎으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흔들리는 나라의 중심을 잡아야 할 정치권은 사실상 표류 중이다. 협치의 자리에 진영논리가 들어서면서 여야 대치는 일상화되었고, 하나가 되어야 할 광장은 두 개로 쪼개진 채 각자의 목소리만 난무하고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 판결에 대해서도 불복할 조짐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둘째주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탄핵심판 결과가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42%에 달했다.

정치 영역의 갈등이 시민의 일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사회갈등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변화와 시사점’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유형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이며, ‘자신과 정치성향이 다른 이와 사회단체 활동을 할 의향이 없는 사람은 71.4%’, ‘정치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 및 결혼을 할 의향이 없는 사람은 58.2%’였다.

작금의 이념갈등과 국민분열의 근본 원인은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 능력의 부재에 있다. 역사사회학적 시선에서 보면 어느 시대나 존재해온 사회갈등은 구성원 대다수의 동의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극복되어 왔다. 최근 우리 사회의 ‘사회적 합의’가 실종된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맨 앞자리에 있다. 정치의 최우선 덕목은 시민 갈등과 이해관계를 제도권으로 수렴하고 조정하며 해법을 찾는 ‘사회적 합의’를 실행하는 것에 있다. 그것이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탁받은 정치권의 기본책무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권은 정략적 이해관계와 그것에서 파생된 진영논리를 내세우면서 협치와 타협의 ‘사회적 합의’는 길을 잃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치유할 해법으로 우리 헌법의 기본정신인 ‘공화주의’로의 성찰을 제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미국 정치학자 필립 페팃은 ‘신공화주의’(2012)에서 공화주의는 “비(非)지배적(non-dominant) 자유를 기반으로 공공선을 지향하는 가치”로 정의한다. ‘공화주의’(2009)를 저술한 정치학자 김경희는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이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정치체제”라 규정한다. 냉혹한 현실주의자였던 마키아벨리도 정치세력간의 이해관계를 사적 방법이 아닌 공적 ‘법 제도’로 해결하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화주의를 예찬했다. 공화주의 학자들의 공통된 정의에 의하면 공화주의는 ‘자유로운 시민의 덕성(virtu)’ ‘법의 지배(rule of law)’ ‘공공선(common good)의 추구’를 핵심으로 한다.

공동체 공존의 기본정신인 ‘공화주의’에서 우리 사회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공화주의는 자유로운 시민의 덕성을 바탕으로 한다’. 광장에 갈라진 시민 모두가 이상과 열정을 가진 애국자이다. 공화주의는 ‘내 속의 타자, 타자 속의 나’를 존중하며 광장의 파토스를 ‘사회적 합의’로 수렴하는 시민의 덕성을 찬양한다. 둘째, ‘공화주의는 법의 지배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공화주의는 사적 갈등을 공적으로 해결하는 법의 지배를 존중한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판결에 승복하는 법치의 존중을 시민의 의무로 내세운다. 셋째, ‘공화주의는 보편적 가치와 공공선을 지향한다’. 공화주의는 사익보다 공공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한다. 로마 제국이 집정관(군주제), 원로원(귀족제), 민회(민주정)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특정 권력의 지배 없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공공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적 이익을 보편적 가치와 공공선으로 이끈다.

‘공화주의’는 대한민국이 피와 눈물 속에 일구어온 민주주의의 내구성을 다지고, 국민통합의 길을 제시하는 우리 헌법의 소중한 자산이다. 도달 불가능한 유토피아처럼 보이지만, 명운을 안고 가야할 길이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을 지켜온 우리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