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거리마다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까지 기념일이 줄줄이 이어지고, 가족의 사랑과 화목을 강조하는 광고도 쏟아진다. 현실의 가족 역시 포스터나 광고 속 가족과 비슷한 모습일까? 누군가에게 가족은 상처의 출발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결핍과 부재의 영역 안에 가족이 있다. 김애란의 문학은 미온한 가족상을 솔직하게 그려내며, 익숙한 상식처럼 생각했던 가족의 단상에 대해 다시 묻는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열일곱 살에 부모가 된 청소년 부부와 희귀병을 앓는 아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이들 가족이 현실을 헤쳐나가는 법을 보여주며 부모 노릇과 자식 노릇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의 책임감과 돌봄의 무게가 당연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소설의 비극적 결말은 결국 거리에서 죽어가는 강아지 ‘에반’과 부모의 돌봄으로부터 멀어진 ‘노찬성’의 처지를 겹쳐보게 한다. ‘가려진 손’에서는 모성의 한계와 도덕적 혼란 사이를 누비며 ‘재이 모녀’의 관계성을 구축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우리는 익숙하지만 낯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가족으로 결합된 나와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는 울타리의 형상이 혹 위태롭지는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라는 단어는 은박지 같다. 쉬이 찢어지는 그 성질을 감추기 위해 그 안을 채우는 개개의 얼굴은 어쩔 수 없이 익어야 하고, 또 굳어져 간다. 우리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누르고 상처를 숨긴다. 지금의 가족은 더이상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될 수 없다. 긴 연휴를 맞아 삼삼오오 모인 친척들이 자연스러운 만큼 긴 연휴 동안 홀로 안식하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 아니므로, 가정의 달이라는 프레임 하에 가족의 모습은 보다 확장되어야 한다.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1990년대생이면 다들 공감하는 초등학교 필수품이 하나 있다. 아버지 어머니 남매가 그려진 표지를 장식하는 파란색 일기장의 이름은 ‘충효일기’였다. 필자 역시 일기쓰기가 숙제였던 초등학교 저학년 내내 해당 일기장을 썼다. 가끔은 그림에 압도되어 외동딸임에도 불구하고 외롭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고 이야기하고, 사회가 그려낸 아버지상에 적합한 아빠의 일상을 꾸며 쓰기도 했다. 실상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모든 경제적 자원이 어머니로부터 나왔음에도, 일기장 속 아버지는 아침에 출근한 후 저녁에 퇴근하며 먹어보지도 않은 치킨을 한 마리씩 사왔다. 때로는 그런 거짓말을 너무 잘하는 바람에 친구들 앞에서 일기를 낭독하다 울음을 꾹 참아야 했다. 나의 가족은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에 들지 못했고, 그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교실에서 부끄러움이 되었다. 그 일기장을 쓸 때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시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곧잘 짠해진다.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오히려 나는 내 가족으로부터 멀어졌던 게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조립하듯 꾸며낸 파란색 일기장의 색은 빛바랜 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퍼즐 같은 가족을 짜 맞추는 아이들이 있음을 안다. 그 사실은 ‘노찬성과 에반’ 속 에반이 느꼈을 쓸쓸함과 닮아있다. ‘가려진 손’의 재이 엄마처럼,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을 가진 이들은 ‘보통’이라는 말 앞에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김애란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어린 시절 나는 ‘가족’과 ‘사랑’ 사이 벌어진 틈을 가늠하느라 바빴다. ‘정상 가족’에 맞추기 위해 눈물을 참던 그 시절이 5월의 포스터를 볼 때마다 향수처럼 떠오르는 걸 막을 길이 없어 착잡한 요즘이다.
부산의 거리마다 카네이션을 파는 노점이 서고, 시장 어귀에서는 어버이날을 앞두고 꽃다발을 사는 손님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이제 김애란의 문학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왔다. 가족은 언제나 사랑의 이름으로 기능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 안에서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가정의 달’은 비로소 성찰의 시간이 된다. 그리하여 5월은 가정의 현실을 돌아보는 거울로 작동하며 파리하게 서 있는 달이다. 당신의 거울에 비친 가족의 얼굴은 안녕한가. 부디 안녕하길 바란다.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는 열일곱 살에 부모가 된 청소년 부부와 희귀병을 앓는 아들이 등장한다. 소설은 이들 가족이 현실을 헤쳐나가는 법을 보여주며 부모 노릇과 자식 노릇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가족 구성원 간의 책임감과 돌봄의 무게가 당연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소설의 비극적 결말은 결국 거리에서 죽어가는 강아지 ‘에반’과 부모의 돌봄으로부터 멀어진 ‘노찬성’의 처지를 겹쳐보게 한다. ‘가려진 손’에서는 모성의 한계와 도덕적 혼란 사이를 누비며 ‘재이 모녀’의 관계성을 구축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을수록 우리는 익숙하지만 낯선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가족으로 결합된 나와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는 울타리의 형상이 혹 위태롭지는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정상 가족’이라는 단어는 은박지 같다. 쉬이 찢어지는 그 성질을 감추기 위해 그 안을 채우는 개개의 얼굴은 어쩔 수 없이 익어야 하고, 또 굳어져 간다. 우리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누르고 상처를 숨긴다. 지금의 가족은 더이상 하나의 모습으로 설명될 수 없다. 긴 연휴를 맞아 삼삼오오 모인 친척들이 자연스러운 만큼 긴 연휴 동안 홀로 안식하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 아니므로, 가정의 달이라는 프레임 하에 가족의 모습은 보다 확장되어야 한다.
부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1990년대생이면 다들 공감하는 초등학교 필수품이 하나 있다. 아버지 어머니 남매가 그려진 표지를 장식하는 파란색 일기장의 이름은 ‘충효일기’였다. 필자 역시 일기쓰기가 숙제였던 초등학교 저학년 내내 해당 일기장을 썼다. 가끔은 그림에 압도되어 외동딸임에도 불구하고 외롭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고 이야기하고, 사회가 그려낸 아버지상에 적합한 아빠의 일상을 꾸며 쓰기도 했다. 실상 우리 가족을 지탱하는 모든 경제적 자원이 어머니로부터 나왔음에도, 일기장 속 아버지는 아침에 출근한 후 저녁에 퇴근하며 먹어보지도 않은 치킨을 한 마리씩 사왔다. 때로는 그런 거짓말을 너무 잘하는 바람에 친구들 앞에서 일기를 낭독하다 울음을 꾹 참아야 했다. 나의 가족은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에 들지 못했고, 그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교실에서 부끄러움이 되었다. 그 일기장을 쓸 때마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쓰는 시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할 때면 마음이 곧잘 짠해진다.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오히려 나는 내 가족으로부터 멀어졌던 게 아닐까.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조립하듯 꾸며낸 파란색 일기장의 색은 빛바랜 과거가 되었지만, 여전히 퍼즐 같은 가족을 짜 맞추는 아이들이 있음을 안다. 그 사실은 ‘노찬성과 에반’ 속 에반이 느꼈을 쓸쓸함과 닮아있다. ‘가려진 손’의 재이 엄마처럼, ‘정상 가족’이 아닌 가족을 가진 이들은 ‘보통’이라는 말 앞에서 어깨가 움츠러든다. 김애란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어린 시절 나는 ‘가족’과 ‘사랑’ 사이 벌어진 틈을 가늠하느라 바빴다. ‘정상 가족’에 맞추기 위해 눈물을 참던 그 시절이 5월의 포스터를 볼 때마다 향수처럼 떠오르는 걸 막을 길이 없어 착잡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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