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라서 그럴까. 근래 노환이나 병환으로 영면하신 분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자주 접한다. 얼마 전에는 인척의 부음을 전해 듣고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왔다. 상주와 함께 문상객을 어엿하게 응대하는 어린 처조카의 소복하게 부어 있는 눈을 보고 할머니를 잃은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날것의 통증이 잦아들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그리움은 평생 이어질 텐데 하는 생각에 그 어엿함이 더없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리움은 결핍에서 비롯되고 내성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결핍감이 도드라질 때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치 그림자가 맑고 화창한 날이면 더욱 선명해지는 것과 유사한데, 아마도 행복한 그 순간에 함께할 수 없어서 애가 타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한 세대를 건너서야 만날 수 있는 혈연인지라, 할머니를 추억하는 나의 시점은 대체로 유년기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할머니는 태어나 처음 겪는 어머니의 역할을 통해 본능과 전능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조건 없는 자식 사랑을 완벽하게 숙달한 이후 노년기에 이르러 삶의 지혜와 자애마저 갖추었기에, 세대를 건너뛴 이 둘의 합은 맞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모두가 내 편인 가족 안에서조차 무조건적으로 나를 지지하는 구성원이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하는 시기에 큰 힘이 된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에는 짙은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감각이 기억하는 그리운 곳, 할머니의 무릎베개. 은은하게 후각을 잡아끌던 할머니의 체취로 몸과 마음이 더없이 평안했던 보금자리였다. 근래 나이가 들어가며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자주 신경이 쓰이는데 피부의 지방산이 산화되며 생성되는 화합물, 노넨알데하이드 때문이란다. 당시 할머니 몸에 배어있었을 노넨알데하이드는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 달리 왜 그리 푸근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한없이 편안함을 느끼던 안식처이자 노래와 이야기, 그리고 놀이가 어우러지던 행복한 시공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릎을 베고 듣던 할머니의 노래는 후각을 잡아끌던 체취만큼이나 푸근했다. 어찌 들으면 노래라기보다 흥얼거리는 말에 가까웠으며, 서사와 서정을 담은 그 타령조는 어머니를 포함한 윗세대가 들려주던 노래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말의 사투리처럼 노래(음악)도 지역적으로 다른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토리’라고 한다. 당시 할머니의 타령조는 강원도 권역이 포함된 메나리토리의 노래였고, 그 안에는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지는 오랜 세월이 담겨있었다.할머니의 무릎베개는 폭신하고 따스한 이부자리와 같은 촉감으로도 기억되는데, 그곳에 널려 있던 조각조각의 사연은 옛날이야기를 통해 통시적으로 꿰어졌다. “옛날 옛적에~”의 틀로 시작하는 다양한 서사를 통해 청개구리가 비 오는 날이면 왜 우는지, 수수는 왜 붉은색을 띠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던 순간은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던 순간의 희열감과 다를 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할머니의 아주 먼 할머니들, 삼신·마고·영등 할미를 비롯해 사람이 되려고 쑥과 마늘을 먹은 곰과 호랑이 등의 신화는 나와 우리,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해왔는지를 사실처럼 믿게 만들어,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것들이 하나로 점철되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 세상살이의 지혜와 관용, 사필귀정과 인과응보의 사회과학을 배울 수 있었고 어린 나이에도 비현실적이라 생각할 정도로 과장되게 꾸며진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에 머무르지 않고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는 시작점이 되었다.

얼마 전 지긋함을 풍기는 가수의 성음에 감동해 한동안 그녀의 노래에 빠져 있었다. 1972년에 발표한 곡 ‘개여울’, 김소월 시의 깊은 울림과 칠십 중반의 세월이 담긴 그 성음에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으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선명해졌다. 힘들고 지쳐서 더는 맞설 수 없는, 그저 따듯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그런 때, 이유를 묻지 않고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존재가 내어주는, 할머니의 무릎베개가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