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법개혁의 방안으로 법원행정처 폐지 및 법관인사를 담당할 사법행정위원회(국회 추천 비법관 위원 3분의 2로 구성) 설치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재판을 맡은 J판사가 말도 안 되는(?) 재판을 하고 있고, 다른 영장 판사들이 내란범에 대해 영장을 기각하는 것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인사권 때문이라는 이유와 함께. 정치적 사건의 재판을 문제삼아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박탈하겠다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헌법 101조는 이미 사문화된 조항으로 보이는지, 아니면 위 헌법조항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지, 다수의 국회의원은 헌법을 다르게 해석할 권한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법관이 정치적인 사건을 맡아 재판을 할 비율은 어느 정도가 될까? 정치적인 사건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지만 대통령 등 집권자가 관심을 가질 만할 사건은 평생 한두 건도 안 될 것이다. 나머지 사건들을 판사들은 묵묵히 처리한다. 복잡한 건설사건이나 의료사건, 주장도 정리 안 된 곗돈 사건들을 배당받고 재판을 한다. 판사로 일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결론을 모르고’서는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제일 잘 아는 당사자와 조금은 모자라지만 당사자 못지 않게 진실을 아는 변호사 사이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 헤매는 일은 쉽지 않고, 가공돼 제출된 증거를 가지고 내린 결론이 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지금도 J판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판사들은 마찬가지 마음으로 사건 처리시간이 늘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해가 갈수록 두꺼워지는 기록과 갈수록 복잡해지는 주장들을 검토하느라 기록을 보고 판례를 찾고 판결문을 작성하느라 바쁘다. 이런 보통의 판사들은 인사에 대해 무심하거나 무지하기까지 하다. 그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법원(대법원장)을 믿고 정해진 순서대로 배석-단독-부장판사의 길을 걷고, 지방-수도권-서울-지방 순서로 근무처를 옮긴다. 이렇듯 외부에 눈돌리지 않고 기록과 씨름하는 거의 대다수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을 국회의원이 추천하는 외부위원들에게 맡기겠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대법원장은 믿을 수 없고 외부 위원들은 믿을 수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예전보다 조금 정도가 덜해지기는 했지만 여진히 배석판사는 부장판사를 어려워하고, 부장판사는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을 어려워한다. 장기미제 사건을 맡아서 재판을 하는 법원장에게 자기 사건이 장기 미제가 되어 재배당되지 않도록 애쓴다. 판사들은 선배 판사들이 자신을 ‘나름’ 정확하게 평가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법정 밖에서 이름 있는 판사와 재판을 충실하게 하는 판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판사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외부에 이름이 알려진 판사가 어느 날 정치인으로 변신한다면 ‘법원을 위해서’ 다행으로 여기기도 한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의미에는 판사는 자기가 재판하지 아니한 사건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다. 이는 재판이란 변론과 기록상 증거를 통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인데 판결문이나 관련자들로부터 들은 단편적 사실만을 가지고 다른 판사가 한 재판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거니와 이는 필연적으로 재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외부 위원들이 판사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작금의 정치적인 사안에 관한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일부 재판에 불만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외부 위원에게 준다고 해서 불만이 없어질까? 외부 위원회의 인사권에 의해 임명된 법관이 (소위 말하는) 내란사범에 대하여 영장을 기각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면 법관이 알아서 눈치껏 외부 위원회의 인사권을 의식해서 외부 위원회의 구미에 맞게 재판을 해 주기를 원하는 것일까? 만일 후자라면 굳이 법원을 존속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