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국에 희토류 등 전략 광물을 생산하는 제련소 건설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국내 산업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과 ‘한미 전략 자원 동맹’을 본격화하는 점은 긍정적이나 국내 제조업 기반이 약화하는 ‘탈코리아’ 흐름 가속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어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 원을 투자해 대규모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미 정부·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워 추진하는 사업으로 미 상무부와 국방부가 참여하고, 미 정부가 40% 지분을 보유하는 구조다.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주에 11조원 규모의 통합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한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 제련소 투자안을 의결했다. 사진은 16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모습.연합뉴스

미 제련소는 2027년 착공해 2029년부터 순차 가동되고, 호주·남미 광산과 미국 내 도시광산에서 확보한 원료를 바탕으로 첨단 공정 기술을 적용해 13종의 금속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할 계획이다. 중국이 희토류와 핵심 광물을 전략 무기로 활용해 공급망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제련·가공 생산시설을 확보하게 된 미국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울산에 뿌리를 둔 향토기업이 해외 투자를 확대하면 자연스레 국내 제련 산업은 위축된다. 고려아연의 핵심 생산거점인 온산제련소는 울산 제조업과 고용 구조의 큰 축을 담당해왔다. 핵심 공정과 투자를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울산 산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략 광물 생산과 관련, 회사 측이 국내 투자와 고용 계획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울산 경제계 걱정이 커졌다. 고려아연뿐만 아니라 올해 초 현대자동차그룹도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31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철강·자동차·미래산업 등 전 분야에 걸친 대규모 투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자동차 관세 강화 기조에 대응해 현지 생산 확대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특히 현대제철이 추진하는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연간 270만ｔ 생산 규모로, 우리나라의 기존 대미 철강 무관세 수출 쿼터를 초과한다. 현대제철의 대미 수출 물량이 현지 생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역시 부산 울산 경남 조선업에 큰 위기와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조선 기술과 생산 능력을 전수받아 쇠퇴한 미국의 조선업을 살리려는 것이다. 조선업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 경쟁력 약화와 기술 유출, 지역 경제 공동화가 예상될 정도로 후폭풍이 크다.

이처럼 미국의 관세 압박과 함께 현지 시장 공략을 명분으로 해외로 나가는 기업 증가의 명암이 뚜렷하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국내 생산 비중이 줄어 국내 제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정부는 기업 해외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과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겠다. 국내 철강·자동차 산업 성장을 위한 정책적 지원과 기업의 과감한 국내 투자 결정도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