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윤석열 정부와 여당에 대한 준엄한 심판으로 마무리됐다. 최종 결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예외 없이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은 180~190석을 확보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조국혁신당(12~14석)까지 합하면 범야권은 개헌 가능선인 200석 이상도 노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대로 확정될 경우 사상 최대 격차다. 국민의힘으로선 참패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충격적인 성적표인 셈이다. 민주당은 122석이 걸린 최대 경합지 서울 인천 경기를 거의 싹쓸이한 반면, 국민의힘은 텃밭인 40석의 부산 경남 울산조차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결과다. ‘정권심판론’과 ‘거대 야당 심판론’이 강하게 부딪혔지만 결국 전자가 더 먹힌 것이다. 1992년 이래 최고 투표율이라는 67.0%의 진짜 의미다. 이로써 집권 3년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는 21대에 이어 다시 한번 여소야대 국면을 맞고, 향후 국정운영에 심대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이해찬·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왼쪽), 국민의힘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 등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일방통행이 중도층 표심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종섭 호주 대사 논란, 황상무 수석의 회칼 발언, 대통령 대파 논란 등은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사건에서 보듯 국민과의 소통을 사실상 거부하는 대통령 스타일에 실망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제한된 인력 풀 안에서만 가동되는 인사와 그마저도 잦은 검증 실패로 국민 마음을 서서히 멀어지게 한 것이다. 254개 선거구에서 초박빙 승부처가 늘어갔고 경합지 대부분은 국민의힘 텃밭이었다는 사실이 그런 여론을 증명한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원톱으로 내세워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역부족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여당에게 허송할 시간은 없다. 하루 빨리 당정을 추스리고 의정 갈등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 개혁을 완수하고 24번의 민생토론회를 통해 쏟아낸 각종 약속을 지키려면 한시가 바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등에서 길어지는 전쟁 탓에 전세계 경제난 영향이 우리나라에도 미친다. 무엇보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로 인한 국민의 삶이 극도로 피로하고 고달프다. 이제 진짜 민생의 시간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야당에 협치를 구하되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정운영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야당 역시 승리의 기쁨에만 취해있을 때가 아니다. 비명 학살 공천을 통해 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입법권력까지 쥐게 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만만찮다. 21대 국회 때처럼 갈등과 대립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 더 큰 힘을 얻었다고 정부 여당이 하고자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면 국가는 멈춰설 수밖에 없다. 정부 여당 견제는 야당의 존재 이유이지만 동시에 자체 역량을 보여야 그 비판이 빛난다. 국민을 위해 쓰라고 준 힘을 특정인의 사법리스크를 방어하는데 사용하는 건 더더욱 거대 의석을 안겨준 민심에 부응하는 일이 아니다.

4·10 총선은 역대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민주당은 친명세력을 꽂느라 ‘비명횡사’가 만연했고, 국민의힘은 ‘친윤불패’였다. 유세장에서는 온갖 저질스러운 막말이 횡행했다. 진짜 최악은 선거제 그 자체다. 선거구는 선거일을 40여일 앞두고도 갈팡질팡하다 비례를 한 석 줄여 겨우 획정했고, 정당사에 길이 남을 기형적 제도인 준연동형 비례제는 허점을 파고든 위성정당, 비례전용정당의 온상이 됐다. 이를 딛고 국회 입성 혹은 재입성에 성공한 인물 중에는 함량 미달 인사가 하나 둘 아니다. 그 바람에 소수정당의 공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환호성을 외치거나 패배의 눈물을 흘리기 앞서 여야는 이런 정치 현실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