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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2>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

평생 옥죈 10월의 상처 … ‘빨갱이’ 낙인찍힐까 숨죽이고 살아

  • 국제신문
  • 임동우 신심범 기자
  •  |  입력 : 2019-09-03 19:39:28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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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항쟁 참여했던 한 씨

- 경찰에 무차별 폭력 당한 뒤
- 30년간 단 하루도 불 끄고 못 자
- 가족에게도 말못한 그날의 기억
- 그저 잊고싶다는 말만 되풀이

# 우연히 시위에 동참했던 허영일 씨

- 정권 바뀌기 전까진 증언 안 해
- 직장 다니면서도 피해될까 걱정
- “부마항쟁 민주화 한 획 그었지만
- 사람들 여전히 시위 나쁘게 봐”

# 억울하게 옥고 치른 노승권 씨

- 예비군 훈련 마친 뒤 귀갓길서
- 파출소 방화혐의로 경찰에 연행
- 42일간의 고초 트라우마로 남아
- 지금도 먹는 약만 20가지 넘어

민주주의는 ‘핏길’ 위를 걷는다. 민주화를 향해 내디딘 부마의 큰 걸음은 40년 전 수많은 이가 쏟아낸 ‘피 웅덩이’ 위를 지나야 했다. 피 흘린 자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고통, 외로움, 분노가 평생을 뒤따른다. 1979년 10월의 아픔에 붙잡힌 이들은 신음 한 번 제대로 내기 어려웠다. ‘빨갱이’라는 오명은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상처를 들쑤셨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시위대가 옛 부산 동래경찰서 앞을 지나는 모습.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공
■40년 전의 한 달, 평생을 망쳤다

한모(60) 씨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남대 회계학과 1학년이었다. 10월 18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연행된 그는 같은 달 21일 구속됐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삶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한 씨 가족은 한 달 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그는 침묵을 지켰다. 최근에야 그가 경찰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한 사실을 들었다. 그의 큰누나는 “언젠가 동생이 경찰에게 곤봉으로 정말 많이 맞았다고 하더라. 때리던 경찰은 ‘학생이 공부나 하지 빨갱이 짓을 왜 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고 말했다.

가족은 그에게 아무 것도 묻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가 전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비슷했지만, 가족은 그와 함께 밥을 먹은 후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 씨는 한 달 내내 음식을 먹자마자 설사를 했다.

당시 경찰의 수상한 방문과 엄혹한 시대상 또한 지난 시간을 가슴속에 묻게 했다. 한 씨 누나는 “형사들이 여러 번 집으로 찾아왔다. 이웃이 무슨 일인지 물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빨갱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레드 콤플렉스’가 광기를 떨치던 때, 가족은 한 씨가 부마항쟁 당사자였음을 숨겼다. 괜한 피해를 볼까 봐 두려워 기소 유예 처분이 내려진 판결문조차 아직도 받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난 한 씨는 전국을 떠돌며 30년 넘게 목수·배관공으로 살았다. 가족은 이제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가끔 고향 집에 올 때면 밤이 돼도 방에 불이 꺼지지 않고, TV 소리가 커졌다. 그게 이상 신호라는 걸 알게 된 건 2년 전이다.

2017년 한 씨는 스트레스성 당뇨를 앓던 중 발가락이 괴사해 수술을 받았다. 또 치료 중 경동맥이 막혀 몸 왼쪽이 마비됐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한 씨는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도무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밤이 되면 간병인과 간호사를 찾았다. 간병인이 오지 않으면 병실이 떠나가도록 간호사를 불렀다. 막상 간호사가 오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한 씨 누나는 “동생은 밤이 무섭다고 했다. 30년 넘게 단 하루도 전등과 TV를 끄고 잔 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게 육십 평생 중 단 한 달의 기억 탓이라는 사실에 한 씨의 누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 사람의 평생을 뒤흔드는지 모르겠다”며 “지금도 동생은 당시 일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채 그저 잊고 싶다고 한다. 동생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가슴을 쳤다.

■“그저 아픈 기억으로 묻었다”

허영일(60) 씨는 지난 5월 부마항쟁 관련자가 됐다. 항쟁 당시 본 피해를 신고해 달라는 공문을 받은 지 5년 만에 신청서를 낸 결과다. 그는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부마는 아픈 기억이었다”고 했다. 허 씨가 증언을 주저한 이유다.

허 씨는 부마항쟁 당시 경남 마산(현 창원) 남성동에서 외삼촌이 운영하는 전자상가의 보조원으로 일했다. 그해 10월 18일 오후 7시 일을 마친 허 씨는 친구를 만나러 마산시 창동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주변은 시끄러웠다. 시위에 나선 경남대 학생과 경찰이 터뜨린 최루탄으로 시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친구들은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행렬에 끼었다. 30분가량 시위에 동참한 허 씨는 군인들과 맞닥뜨렸다. 친구 3명과 도망치던 중 한 다방에 숨었다. 곧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별다른 말 없이 그들을 끌고 나갔다. “왜 이러느냐”는 물음에 “잔소리하지마”라는 답이 돌아왔다. 허 씨는 이미 붙잡힌 6, 7명과 함께 경찰차 안으로 구겨 넣어졌다.

마산경찰서로 끌려갔다. 경찰과 계엄군이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누군가 허 씨의 팔을 낚아챘다. 무의식적으로 팔을 뿌리치니 뒤통수로 곤봉이 날아왔다. 허 씨는 “사정없이 맞았다. 건물 현관에 사람들이 무릎 꿇고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는 자세로 있었다”며 “맞아 죽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뛰어 무리 속으로 숨었다”고 회상했다.

경찰서 보호실에는 80~90명이 다리도 뻗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조사받을 땐 바닥에 무릎을 꿇려 손을 뒤로 해 수갑을 채웠어요. 경찰이 대뜸 ‘돌 몇 개 던졌느냐’고 묻더군요. 안 던졌다고 했더니 군홧발로 무릎을 밟았어요. 그래서 3개 던졌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경찰은 대학생의 옷에 ‘劇(심할 극)’ 자를 그려 따로 표시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맞았다고 허 씨는 회상했다.

허 씨는 지금껏 당시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다. “직장을 다닐 때 내가 구류를 산 전력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부마는 민주화운동에 한 획을 그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시위 자체를 나쁘게 봅니다. 시위하는 사람은 여전히 ‘빨갱이’ 취급을 당해요.”

■엉뚱하게 붙잡혀 40년간 고통

“예비군 훈련에 갔다가 오는데 ‘파출소에 불을 질렀다’고 마구 때렸어요. 지금도 경찰을 보면 분노가 치밉니다.”

그해 10월 18일 29세이던 노승권(69) 씨는 예비군 훈련을 끝내고 신마산역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사격 성적이 좋아 사단장 표창을 받은 걸 축하하는 자리였다. 밤 9시께 자리를 파하고 마산역 인근 누나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길에 방독면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방독면을 집어 들고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그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쳤다. 머리를 여러 차례 밟혔다. “번갯불이 번쩍하더니 기절했어요. 다음 날 깨어 보니 마산경찰서더군요. 입고 있던 군복과 바닥이 피로 범벅이 됐어요.”

노 씨는 머리 세 군데가 터졌다. 형사들은 “이 ×× 머리가 터져서 죽겠다. 큰일이다”고 수군거렸다. 인근 병원에서 30바늘을 꿰맸다. 크게 다쳤지만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경찰은 그에게 파출소 방화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그런 적 없다고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이후 그는 부산 헌병대로 넘어가 재판을 받았다. “군 법무관은 ‘마산경찰 나쁜 놈들이 시위 주동자 대신 엉뚱한 사람을 잡아 왔다’고 화를 냈어요. 거기에는 예비군복을 입은 사람이 6명이 있었는데 전부 나처럼 엉뚱하게 붙잡힌 사람이었어요. 우리를 조사한 경찰 30여 명이 불려와 법무관에게 혼이 났습니다.” 노 씨는 소요죄로 붙잡힌 지 42일 만인 11월 28일 풀려났다.

“당시의 트라우마로 10년간 머리가 아팠습니다. 지금도 머리가 아파 먹는 약이 스무 통이 넘어요. 그때는 군 복무 기간이 36개월이나 됐지만 나라에 나쁜 감정이 없었어요. 나라를 위해 훈련받고 오는 길이었는데 집회 주동자로, 파출소 방화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어요.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40년 전을 떠올리며 그는 먼 곳을 바라봤다.


◇ 허영일 씨의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인정 문서

<이유>

신청인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전자제품판매점 직원으로서, 1979년 10월 18일 19:00경 마산시 남성동 소재 대광예식장 앞 노상에서 ‘유신철폐’ ‘독재타도’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를 하다가 같은 날 20:30경 그 주변 고전다방 지하 계단에서 사복경찰들에게 체포되어 마산경찰서로 연행, 조사를 받고 같은 달 2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구류 5일, 유치명령 5일을 선고받고 같은 달 29일 위 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된 사실이 있으므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라목의 규정에서 정한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하여 구금된 자’에 해당하므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받기 위하여 신청함.

<판단>

우리 위원회 조사관의 신청인 면담조사 녹취록, 즉결심판서, 즉결청구서, 행정법규위반자 적발보고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에 의하면 1979년 10월 18일 경찰에 체포돼 마산경찰서에 연행된 후 같은 달 2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원에서 경범죄처벌법위반으로 구류 5일 유치명령 5일을 선고받고 같은 달 29일 마산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된 사실(총 구금일수 12일)이 인정된다. 따라서 신청인은 법률 제2조 제2호 라목에서 정한 ‘부마민주항쟁과 관련하여 구금된 자’로 봄이 상당하므로, 법률 제 4조 제2항 제2호에 따라 신청인을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심의·결정한다.

-2019년 5월 2일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

임동우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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