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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남영희가 만난 무대 위의 사람들 <17> 뮤지컬 연출가 박정우

“큰 상 받아도 불러주는 곳 없어 … 이럴거면 직접 무대 만들자 결심”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9-08 18:41:4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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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밥그릇 빼앗는 듯한 경쟁
- 식민지배 못벗어난 문화예술계
- 자괴감 들어 아예 직접 팔 걷어
- 2012년 극단 창단·뮤지컬 제작

- 8년째 인기 순항 ‘복순이 할배’
- 매년 재상연 ‘구름 위를 걷는자’
- 지역색 살린 소재로 성공 거둬

- “무조건 지원·보호 바라기보다
- 어필할 수 있는 공연 만들겠다”

공연 시장이 위기란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접속했다. 올해부터 데이터 전송이 의무화되었으니 현실적인 통계치다. 올해 1월부터 8월 말까지 연극은 920건 77만 관객, 1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클래식음악은 1522건 55만 관객, 매출액은 62억 원이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장르들이다. 뮤지컬은 차이가 확연하다. 같은 기간 1124건 공연에 184만 관객, 매출액은 650억 원을 넘는다. 뮤지컬은 이미 산업이다.

■겁 없는 청년, ‘복순이 할배’ 만들다

‘뮤지칼 복순이 할배’ 공연 후 출연진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박정우(뒷줄 왼쪽). 국제신문DB
뮤지컬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청년이 있다. 2012년 극단 ‘아트 레볼루션(Art Revolution)’을 창단하고 첫 작품 ‘뮤지칼 복순이 할배’를 세상에 내놓았다. 만 27세였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이 공연은 8년째 계속 상연되는 스테디셀러다. 대본과 음악, 연출과 제작 모두 그 청년, 박정우의 작품이다.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 합격해 서울로 갔습니다. 주인공 킴의 정혼자 튜이 커버를 맡았습니다. 베트남인이죠. 공연 때 분장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한국인이나 베트남인이나 ‘같은’ 동양인이라 구분이 안 된다는 이유였어요. 심한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치열한 경쟁 구도 역시 숨통을 죄는 듯했다. “제가 앉기 위해 남의 방석을 빼앗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꿈과 삶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무게를 재니 꿈이 더 무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삶이 더 나은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2008년과 2009년 연이어 대상과 연기상을 받아 런던 웨스트엔드로 연수까지 다녀온 실력파 연기자라도 딱히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무대를 찾아다녔다. 재미없고 지루한 공연이 많았고, 뮤지컬 제목은 대부분 외국어였다. “주인공 이름도 모두 낯설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욕적인 식민지 역사를 겪었는데도 왜 문화예술에서는 식민지배를 벗어나지 못하나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삐딱한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이렇게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순이 할배’는 그렇게 탄생했다. 제목부터 부산 사투리이듯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못 할 이유를 다 따져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죠. 그저 한번 올려보는 데 그치지 않고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고 싶었습니다.” 적더라도 반드시 수익을 내겠다는 일념으로 더 치열하게 연습했고 대본을 수없이 다듬었으며 배우들과 함께 포스터도 붙이러 다녔다. 유명 스타가 나오지도 않고 그 이름도 촌스러운 ‘복순이 할배’가 주인공이지만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친근한 일상과 소박한 감성, 잔잔한 힐링 그리고 박정우 특유의 재기발랄한 웃음코드가 현대 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기 때문이다.

■초연 전회 매진 ‘구름 위를 걷는 자’

뮤지컬 연출가 박정우. 박수현 선임기자
2016년 해운 최치원을 소재로 제작한 창작 뮤지컬 ‘구름 위를 걷는 자’는 사뭇 달랐다. 웃음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일련의 코드는 없다. 그저 역사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과 천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되풀이되는 역사가 보는 이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질 뿐이다. “과학은 이만큼 발전했는데 인간의 의식과 생각, 사회는 과연 진보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최치원은 신선이 되었다지만 신분의 장벽 탓인지 삶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더군요. 진성여왕 시대의 어지러운 사회를 상상하며 팩션을 썼습니다.”

대본 집필 단계에서 연출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마침표를 찍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재능이 부족하니 노력을 더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밤을 꼬박 지새우는 일도 허다하고 꿈에서 분명 다 쓴 페이지가 없어져 당황하는 아침을 맞이하기도 하죠. 사람들이 일터로 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거창 신원면 외가에서 8개월의 산고 끝에 빛을 본 작품은 해운대문화회관 기획공연으로 상연되었다. 초연 당시 전회 매진을 기록했고 지금까지 매년 재상연되고 있다.

■그로기…펀치 날릴 힘 여전히 있다

오는 12월 상연을 목표로 준비 중인 작품은 ‘그로기’다. 지금 그의 상태이기도 하다. 첫 작품 이후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쉼 없이 작품을 쓰고 제작했다. 한 해 공연이 200회를 넘기도 했다. 어떤 부침이 그를 그로기로 몰고 있는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관객이 찾지 않는 공연을 하면서 연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산은 대도시입니다. 무조건 지원해 달라, 보호해 달라고 하기보다는 관객들께 어필해야 합니다. 지금껏 해 온 일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을 가다듬어 볼 생각입니다. 치열하게 애쓰더라도 결국 실패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의지를 가지고 극복해 나가야죠. 공연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저를 한 뼘 더 발전시킬 겁니다.”

공연예술 자체가 위기지 않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원인을 ‘자신’으로부터 찾아야 한단다. 그래야 한 발 도약하기 위한 움츠림이 된다나. 예술이 언제 홀로 선 적이 있었던가. 응당 예술은 지원받고 육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홀로서기는 어쩌면 무모한 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도 일어나는 법이고 예외적인 일이 한번 발생하면 세상의 당연한 인식은 일거에 깨지는 법이다. 꿈이 삶보다 무겁지 않기에 삶을 좇아 부산으로 돌아왔다는 그는 여전히 꿈을 개척하는 블랙 스완이다. 부산은 그에게 어떤 삶과 꿈의 무대가 되어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로기’를 극복하고 ‘펀치’를 날리는 힘은 건강한 기초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공연기획자·부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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