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교원단체총연합회·학부모총연합회 등 교육단체 4곳 대표와 학부모 등 100여 명이 20일 부산시의회 앞에서 '학생의 학습선택권 조례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방과후학교 참여율 평가지표

- 시교육청 "조례로 제한 부당"
- 교육의원 "교육감 권한 남용"

# 사교육비·공교육 위축

- 광주 시행후 학력수준 하락
- 자율학습도 학부모 부담 ↑

- 조사 주체따라 여론 제각각
- "양쪽 주장 모두 설득력 있어
- 머리 맞대고 절충점 찾아야"

부산 학습선택권 조례의 핵심은 방과후수업·야간자율학습 참여를 학부모와 학생들이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부산시교육청과 부산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습선택권을 보장하면 방과후학교 참여율이 떨어져 사교육비가 증가하고 학력은 저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부산시의회는 "교육은 반강제가 아니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학교 당국이 사교육보다 더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방과후학교 참여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학력저하·사교육비 증가가 쟁점

학습선택권 조례 가운데 논란이 되는 조항은 3조 2항과 4조 2항이다. 3조 2항은 방과후학교의 참여율을 학교 평가지표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부산시교육청 천정국 교육정책국장은 20일 "학교 평가의 기준으로 방과후학교 참여율을 설정하는 것은 교육감의 권한인데 조례로 제한하는 것은 맞지 않다. 특히 3조 2항은 조례 입법예고 때는 포함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넣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례를 대표 발의한 부산시의회 이일권 교육의원은 "교육감이 학부모의 금전적 부담이 동반되는 정규 외 학습 참여율까지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권한 남용"이라고 반박했다.

사교육비 증가에 대한 평가는 극명히 엇갈린다. 4조 2항은 '학교의 장은 특별한 사유 없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뤄져야 하는 교과의 이수활동을 정규 교육과정 외 학습에 함부로 편성하거나 운영하여 학습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학교는 보충수업을 받지 않으려는 학생들을 흡수하기 위해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 ▷학습선택권 보장 여부를 감독할 전문 인력을 배치해 연 1회 이상 실태 조사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방과후학교 참여에 대해 학생과 보호자의 의견이 다른 때는 보호자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했다.

천 국장은 "학생들이 방과후학교를 거부하면 공교육 위축과 사교육 의존율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광주교육청이 학습선택권 조례와 비슷한 내용의 지침을 시행한 결과 학력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반면 이 의원은 "학교가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교육을 받으려는 학생들을 유인하면 된다"면서 "반강제 자율학습이 사교육비 경감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공교육의 내실화에 앞장서야 할 교육청의 그릇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교조 부산지부 역시 "학교가 방과후 수업료, 보충수업료, 심하게는 EBS 교육방송 시청 감독 수당까지 학생에게 부담시키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이 학원 수강료보다 조금 저렴한 돈을 내고 원하지 않는 수업을 듣는 것일 뿐이다. 강제 보충·방과후 수업으로 더 많은 비용을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여론도 조사 주체에 따라 달라

학습선택권 조례 찬반 의견도 조사 주체에 따라 제각각이다. 이 의원이 지난해 4월 25일부터 한 달간 고교 17곳의 2학년 재학생(582명)·학부모(443명)·담임교사(151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학생 43.5%는 '야간자율학습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도움이 된다는 15.8%에 그쳤다. 반면, 교사들은 도움이 된다(62.3%)가 그렇지 않다(9.3%)보다 훨씬 많았다. 학부모들은 도움이 된다(29.3%)와 그렇지 않다(22.3%)가 비슷했다.

반면 부산교원단체연합회가 지난 5월 8일부터 최근까지 초·중·고 학생을 둔 학부모 66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현재 학습선택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학부모 72%(476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금도 방과후수업을 학생·학부모들이 선택하는 있다는 것이다.

학습선택권 조례 시행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비율이 81.1%(541명)로 아니다(9.5%)는 응답을 압도했다.

부산시학부모회총연합회 방현정 회장은 "학습선택권 확대는 동서 교육 격차나 저소득층·맞벌이 가정의 교육 사각지대를 확대해 사회적 불안과 학부모의 불만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례 통과 가능성은

학습선택권 조례는 오는 24일 부산시의회에 재상정된다. 그러나 교육청의 기대처럼 학습선택권 조례가 폐기되거나 대폭 수정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지난 5월 9일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된 조례를 50여 일 만에 뚜렷한 명분 없이 폐기하거나 내용을 바꾸는 데 부정적인 기류가 의회 내부에 강하기 때문이다.

조례가 재의결 경우 '옷로비' 의혹으로 타격을 받은 임혜경 교육감의 리더십이 또 한 번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산시의회와 교육청은 학습선택권 조례는 물론 ▷공립유치원 증설 ▷해양청소년수련원 예산 편성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습선택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은 현재 사회적 흐름으로 볼 때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방과후수업 참여율이 낮아지면 학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의견도 타당성이 있다. 부산시의회와 교육청이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할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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