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무박 4일, 43시간 동안 연속 진행된 남북 간 마라톤 협상은 남북한 7000만 민족의 눈동자 1억4000만 개가 주시하는 속에서 펼쳐졌다. 그러나 남북은 남북회담사를 새로 쓴 사상 초유의 장시간 접촉을 펼치면서 훈령 대기와 정회를 반복하면서도 어느 한쪽도 '판'을 깨지 않는 끈기와 집념을 보였다.

사태 발생 6일 만에 남북 관계의 물줄기를 돌려놓는 의미 있는 합의를 함께 도출해 내기까지는 협상단과 양측 수뇌부의 숨 막히는 신경전과 '밀당(밀고 당기기)', 고뇌 어린 결정, 합의문 문구 조정을 둘러싼 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20일 오후 최전방 서부전선인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남북한 간 경고성 포격전이 벌어진 이래 한반도 정세는 급강하와 상승을 반복했다. 우리 군은 최고수준 경계태세를 발령했고,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북한군 총참모부에서는 22일 오후 5시까지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까지 나왔다.

그러나 북측은 다른 한편으로 대화 카드를 꺼내 보이는 양면전술을 펼쳤다. 북한 대남업무를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지난 21일 오후 4시께 본인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21일 혹은 22일 판문점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1 대 1 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우리 측은 2시간 뒤인 오후 6시께 김 당 비서 대신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 안보실장 간 접촉을 제의하는 수정 통지문을 북측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북측은 22일 오전 9시35분께 북측 대표로 황 총정치국장과 김 당 비서가, 남측 대표로 김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참여하는 2 대 2 고위당국자 접촉을 갖자며 재차 수정제의를 했고, 남측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한반도 위기의 극적 돌파구가 마련됐다.

북측이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 언저리인 지난 22일 오후 6시30분부터 양측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무박 4일간 유례없는 밤샘 마라톤 협상을 진행했다. 첫날 접촉은 이튿날인 23일 새벽 4시15분까지 10시간 동안 진행됐고, 11시간가량 정회한 남북 대표단은 지난 23일 오후 3시30분부터 25일 0시55분까지 무려 33시간이 넘게 피 말리는 샅바싸움을 벌였다.

이 와중에도 북한에서는 잠수함 전력의 70% 규모에 달하는 50여 척이 기지를 이탈해 수중으로 전개됐고,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기지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한미연합군은 이에 맞서 B-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전개 시점을 협의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긴장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양측은 24일 낮 한때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북측이 돌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최종 합의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과거 남북회담이 흔히 그랬 듯 '벼랑 끝 전술'로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막판 줄다리기가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양측은 끝내 합의점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