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오른쪽)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25일 새벽 판문점에서 마라톤 협상 후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꽉 막혔던 남북 관계에 돌파구가 열렸다. 남북 고위급 접촉은 25일 새벽 극적 합의를 도출했다. 이에 따라 장기 경색국면에 있었던 남북관계가 변화할 수 있는 대반전의 전기가 마련됐다. 특히 남북 관계의 최대 핵심 과제인 북핵 문제의 모멘텀이 조성되면서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이날 새벽 판문점에서 열린 고위급 접촉에서 합의한 6개 항의 공동 보도문에 따라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DMZ(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남북 간 합의문에 북한을 명기해 '유감'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해제하고, 남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한다는 부분은 이날 이행됐다.

또 남북은 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고,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남북은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고, 올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 위해 다음 달 초에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기로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향후 남북 관계 전망에 대해 "이제 시작됐고 출발이라고 생각한다"며 "(남북 당국 간) 대화를 정례화·체계화하겠다고 (공동보도문의) 1번에서 얘기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날 합의로 남북의 정상이 경색된 관계를 풀어가는 새 출발점에 섰다고 평가했다. 동국대 김용현(북한학과) 교수는 "두 지도자가 대리인을 앞에 두고 간접적인 정상회담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박근혜 정부는 임기 후반에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고, 북한 김정은 역시 이제까지의 대남정책을 바꿔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중단된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교류협력 사업이 재개되고, 민간차원의 교류도 활력을 띨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남북 당국 간 대화와 이산가족 상봉 등이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양측 최대 핵심과제인 북핵문제에 대한 논의로까지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2008년 이후 올스톱된 상황이다. 이번 남북 간 합의를 토대로 기대되는 관계 개선환경에서 북핵 모멘텀 조성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다각도로 모색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낙관론을 경계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실제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을 발표한 뒤 이번 협상에서 북한의 목표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시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의 핵심인 '북핵 문제'가 명시적으로 거론되지 않은 만큼 전체적인 국면전환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대화와 교류, 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