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이후 부산 울산 경남(PK) 정치를 이끈 김영삼(YS·1927~ 2015) 전 대통령과 노무현(1946~ 2009) 전 대통령은 정치적 멘토와 멘티로 인연을 맺었지만 정치 노선을 달리하면서 평행선을 달렸다.
YS는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최연소 의원(1954년 3대 민의원)에 당선된 이후 9선 의원과 14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 거목이다. YS는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정권과 대결한 야당 지도자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민주화의 두 기둥으로 평가된다.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YS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1983년 단식투쟁을 하며 PK를 기반으로 한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YS는 유신체제 붕괴, 6월항쟁, 현행 '87년 체제' 출범, 군부청산 등 한국 현대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13대 총선을 앞둔 1988년 3월,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이던 YS는 재야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을 영입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시 민주정의당 실세이던 허삼수 후보를 꺾고 13대 국회에 입성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해 '5공 특위'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YS도 노 전 대통령을 수시로 상도동 자택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끝이 났다.
1990년 1월 YS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3당 합당을 결행, 민주자유당(새누리당의 모태)을 창당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를 '야합'이라고 맹렬히 비판하며 합당에 반대했다.
1992년 대선에서 통일민주당 잔류파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이 합당해 민주당이 탄생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시기 부산에서 14대 총선에 출마해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16대 총선에 잇달아 도전하며 지역주의의 아성을 깨려고 노력했다. 그의 이런 도전은 '바보 노무현' 신드롬을 일으켰고, 이는 2002년 16대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