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석굴암, 불국사 도안이 담긴 1만 원권. 결국 발행되지 못하고 세종대왕 도안으로 대치된다.

장롱 속에 깊이 묻어 둔 옛날 돈을 지금 쓰려면 언제 것까지 사용할 수 있을까. 정답은 1962년 6월 10일 단행된 긴급통화조치다.

김동균 한국은행 발권국 차장은 "이날 이후 발행된 돈은 단종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액면가대로 쓸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 이전의 돈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 우리 통화의 틀을 확정지은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이다. 1962년 단행한 화폐개혁은 통화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꿨고 1970년에는 기념주화가 발행됐다. 1972년부터 발행한 1000원권, 5000원권, 1만 원권 '삼총사'는 지금도 지폐의 주축이 되고 있다.

5·16쿠데타 직후 군부가 전격 단행했던 화폐개혁은 정부가 어설프게 개입해 시장을 망칠 뻔했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박정희가 지시한 화폐개혁은 통화발행의 주체였던 한국은행 총재도 까맣게 모른채 진행됐다. 새 지폐는 영국에서 인쇄됐고, 부산항에서 국내 은행까지 운반은 정보부와 군이 맡았다. 그 결과 경제는 혼란에 빠졌고 인플레는 심각해졌다. 한국화폐전사는 이를 "군사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의 한 단면"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흠모했던 박정희는 충무공을 화폐에 남겼다. 충무공의 초상은 1970년대 100원 주화와 500원 지폐에 동시에 사용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한국조폐공사 홈페이지에는 "충무공을 주 소재로 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특별한 관심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박정희도 이승만처럼 그 자신의 얼굴을 통화에 남기려는 유혹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박정희 초상은 1970년 해외에서만 발행됐던 첫번째 기념주화의 도안이 됐다. 이 주화의 뒷면은 다른 주화와 달리 대통령 문장을 넣어 차별화를 뒀다. 한은 관계자는 "세종대왕 고려청자 등 한국적 상징물 사이에 자신의 초상을 끼워넣은 것으로 당시의 서슬을 생각하면 차라리 애교스럽다"고 말했다.

박정희가 자신의 뜻만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1973년 1만 원권은 원래 앞면 석굴암, 뒷면 불국사의 도안이 예정됐다. 전통문화에 대한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불교색이 짙다는 이유로 타종교가 반발하자 이를 철회하고 세종대왕으로 교체했다.

박병률기자 br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