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빙선이 북극해의 두꺼운 얼음을 깨면서 유빙 사이로 항해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북극항로 빙하 녹아내리면
- 2030년 물동량·화물분담률
- 2832만TEU·58.5%로 급증

- 아시아·유럽 주항로 변화로
- 싱가포르·홍콩 경유는 급감
- 부산은 접근성·인프라 우수
- 준비 잘하면 엄청난 수혜

고속도로가 새로 뚫리거나 도로 노선이 변경되면 한 도시나 지역이 순식간에 번성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바닷길도 마찬가지다. 간선 항로를 따라 항만이 개발됐기 때문에 새 항로의 신설은 항만의 부침으로 직결된다. 화주가 외면하는 항만은 항만으로서의 가치가 유지될 수 없다. 북극항로의 개척이 세계 주요 항만의 판도를 바꾸리란 건 전망이라기 보다는 닥쳐오는 현실이다.

■2030년엔 유럽행 화물 60%가 북극항로 이용

북극항로의 최대 장점은 물론 기존 항로에 비해 거리 40%, 운항 시간은 10일 정도 단축되는 데 있다. 아직까지는 빙하가 막고 있어 쇄빙선 투입과 특수선박 확보, 미지의 뱃길을 찾는데 따른 부담 등으로 경제성이 떨어지지만 얼음이 녹는 정도에 반비례해 이용 가치가 높아질 게 당연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분석에 따르면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와 북극항로의 운임 비용이 같을 경우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물동량이 2015년에는 28만 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2020년 398만 TEU, 2025년 1360만 TEU, 2030년 2832만 TEU로 급격히 늘어난다. 이에 따른 북극항로 화물 수송 분담률도 2015년 1.4%, 2020년 13.9%, 2025년 36.0%, 2030년 58.5%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극항로가 아시아 유럽 항로의 주 항로가 되는 셈이다.

해양수산개발원이 한·중·일 3국의 해운·물류기업 80여 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도 비용이 현재와 같고 운항시간이 5일 줄면 한국은 20%, 일본 20%, 중국은 11%의 화주가 북극항로를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10일이 줄면 한·일·중이 각각 72%·69%·24%로, 15일이 되면 한국 96%, 일본 95%, 중국 43%로 나타났다. 단축기간이 빠를수록 화주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18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북극정책 국제심포지엄에서도 참가 패널들은 빠르게 진행되는 북극해의 해빙 속도에 맞춰 '물류혁명'이 임박한만큼 다국가 차원의 준비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수혜항 그리고 피해항

세계 10대 컨테이너 항만 중 9개가 몰린 곳이 아시아이다. 이 중 상위 5개 항만이 순서대로 상하이, 싱가포르, 선전, 홍콩, 부산항이다. 그러나 북극항로가 개척되면 이런 항만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물을 생산해내는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유럽으로 화물선을 보낼 때 지금처럼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경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동해안을 따라 극동러시아~ 캄차카해~베링해를 거쳐 러시아 북극해 연안을 타고 유럽으로 가면 된다. 해양수산개발원 이성우 실장은 "항로를 따라 이동하는 선박들은 주변 항에 들러 화물을 싣고 내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데 북극항로 상에 위치하지 않는 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나 홍콩 등은 아시아 허브항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현재 세계 5위인 부산항은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항 뿐 아니다. 광양항 마산항 울산항 포항항 동해항 등도 현재보다 더 많은 화물 처리가 예상되고 북한의 원산항 나진항도 중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북극항로의 접근 기지로 나진항을 주목, 북·중 양국의 경제특구로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나진항 선석 운영권을 50년간 이미 확보해 놓고 있다. 나진항은 청진항과도 이웃해 있고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도 접해 북극항로의 활성화 땐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극항로가 우리나라 환동해권으로 빠져 나가는 게 유력하기 때문에 일본도 니가타 토야마 카나자와 등 서부 항만의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 상하이항도 북극항로의 기·종점 항이 돼 지금보다 더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의 블라디보스토크항 나호트카항, 북극해 연안의 틱시항과 무르만스크항이 북극항로의 수혜지로 평가되며 유럽에서는 이 지역의 기·종점 항인 독일 함부르크항,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과 노르웨이의 주요 항만들의 물동량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항 유리한 입지 조건 최대한 활용을

북극항로의 개척이 부산항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데 이론은 없다. 우선 동북아 경쟁 항만 중에서 가장 접근성이 뛰어나다. 북극항로에 포함되는 요코하마 상하이와 비교하면 부산에서 로테르담항까지의 운항거리가 1만2700㎞로 요코하마 1만3523㎞ , 상하이 1만4875㎞에 비해 훨씬 짧다. 그만큼의 물류비 절감이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부산항은 국제적으로도 항만 인지도도 높고 인적 물적 인프라도 풍부하다.

기존 항로와 비교하면 부산항의 경제성은 더 드러난다. 해운업계에서는 싱가포르를 기항지로 삼아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유럽으로 가는 것보다 부산항을 통한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척당 연간 900억~1200억 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해양대 남청도 교수는 "지난해 부산항이 유럽이나 태평양 항로 등을 모두 합해 처리한 물동량이 1704만 TEU인데 늦어도 2030년께면 북극항로만으로 이 물동량의 1.5배 가량이 움직이게 된다"며 "북극항로의 개척이 미래 부산항의 위상을 어떻게 좌우할 지 명백해진다"고 말했다.


# 당장은 손해, 2030년엔 '노다지'

- 현재 유빙으로 경제성 낮지만 획기적 항로단축·자원발굴로 화물급증·수산업 활로 선순환

북극항로가 기회의 뱃길인 것은 맞다. 해양 실크로드로도 불린다. 이 기회는 그러나 아직은 가까운 미래의 기회다. 2009년 2척, 2010년 4척이던 북극항로의 선박 운행이 2011년 34척을 거쳐 2012년 46척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운항에는 걸림돌이 많다.

우선 북극해가 완전히 녹은 상태가 아니라 유빙이 선박의 안전 운행에 위협이 되고 있다. 유빙으로 선박이 속도를 낼 수 없으며 쇄빙선의 안내를 받을 경우 비용과 시간이 오히려 더 소요되기도 한다. 또 여전히 항로 개척 단계라 안전성이 확인 안돼 북극지역 항해 때는 30% 가량 높은 보험료를 내야한다. 북극항로를 둘러싼 러시아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관할권 다툼도 장애 요인이다.

그럼에도 이 항로가 각광받는 것은 획기적인 항로 단축과 함께 북극해 자체가 자원 보고이기 때문이다. 북극해와 연안의 동토 지역에는 현재 기술로도 채굴 가능한 원유가 900억 배럴, 천연가스가 47조 ㎥ 매장돼 있어 전세계 석유 메이저그룹들이 개발에 나서고 있다. 북극해의 모든 에너지광물 자원을 합하면 13조5000억 달러(약 1경4000조 원)로 까지 추산된다. 자원 개발에 따른 직접적인 이익은 러시아 등 당사국이 갖겠지만 이 자원들을 전세계로 실어나르는 건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선박들이다. 항로의 활성화가 북극해 개발 가속으로 이어지면서 화물이 증가하는 선순환이 기대되는 것이다. 또 온난화로 인해 북상 한계선이 올라간 대구 명태 임연수어 오징어 등도 풍부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수산업의 활로가 될 수도 있다.

북극항로 운항은 2015년 1개월, 2020년 6개월, 2025년 9개월, 2030년 연중 내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점점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해운업계는 연중 100일 이상 바닷길이 열려야 실용성이 있다고 본다. 북극항로가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다.


권순익 선임기자 marine@kookje.co.kr
신수건 기자 giant@kookje.co.kr

◇2012년 세계 10대 항만 컨테이너 　처리 순위 (단위 : 만 TEU) 1위  상하이 3,253 2위  싱가포르  3,165 3위  홍콩  2,310 4위 선전  2,294 5위  부산  1,704 6위  닝보-저우산  1,683 7위  광주  1,473 8위  청도  1,450 9위  두바이  1,327 10위  텐진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