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부산지역 우수 수출기업인 '나라코퍼레이션'의 강서구 명지공장에서 직원들이 수출용 풍력·선박엔진 등 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엔저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지역 업체들의 수출 채산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 100엔당 1100원대로 하락

- 선박 부품 업체, 日시장 대신
- 유럽·미국시장으로 눈 돌려
- 해외시장 日 업체에 잠식

# 자동차부품업체에 불똥

- 현대·기아차 영업이익 감소
- 부산 부품업체 납품량 줄어
- 농수산업계는 내수로 돌려

부산상공회의소가 '원고 엔저 지속과 기업의 대응전략'을 주제로 지난 16일 오전 7시에 연 경제포럼에는 지역 경제인 160명이 참석했다. 부산상의 조성제 회장은 28일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기업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시 이른 시간인데도 대거 모인 것은 그만큼 기업들이 엔저에 고통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엔저 직격탄 제조업 '신음'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산단서 선박관련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A사는 최근 경영회의를 열어 일본 수출물량을 줄이고 유럽과 미국시장을 확대하기로 수출전략을 수정했다. 이 업체의 대일 수출물량은 연간 30억 원 정도.

A사 관계자는 "지난해 초 100엔당 1300원 정도로 기대하고 일본수출을 확대하기로 했지만 1100원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라며 "물건을 달라는 일본업체가 많지만 채산성이 떨어져 포기했다"고 밝혔다.

지역 수출기업들은 수개월 사이 20% 이상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일본기업에 바이어를 빼앗기거나 채산성이 악화되는 등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날 기획재정부는 원·엔 환율이 10% 떨어지면 2분기 한국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은 100엔에 대한 원화환율 1343원을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엔저가 지속되면 채산성이 악화된다.

따라서 해외시장에서 일본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자동차와 철강 관련 기업은 환율 때문에 속이 탈 수밖에 없다.

일본 철강업체들이 엔저를 무기로 해외시장을 확대하면서 지역 철강업체들도 고전하고 있다. B사는 철강 신제품을 해외시장에 내놓았지만 일본업체가 엔화 약세를 무기로 수출시장을 잠식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B사 관계자는 "일본으로 철강제품을 수출할수록 손해"라고 털어놨다.

■차부품· 농수산업계 수출 기로

자동차업계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현대자동차는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10.7% 줄어든 1조8685억 원을 기록했다. 기아차도 1분기 매출이 11조848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 감소했다. 글로벌시장에서 토요타, 마쓰다 등 일본차가 독식하면서 현대·기아차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여파로 지역 자동차부품 납품업체들에 불똥이 튀고 있다. 부산지역 자동차부품 업체의 70%는 현대·기아차와 거래하고 있어 엔저 파고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자동차부품 업체인 C사는 엔저로 수출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말 대비 대일 수출물량이 10% 이상 감소했다. 여기에 현대·기아차 납품물량이 줄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부산자동차부품공업협동조합 최범영 이사장은 "엔저 등 대외환경 때문에 해외수주가 어려운 지역업체가 늘고 있다"며 "자동차부품이 지역 주력산업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조업과 농산물뿐 아니라 부산 수산업계도 엔저 여파로 대일 수출물량이 줄어 고민하고 있다. 일본에 명란젓을 수출하고 있는 '덕화푸드'는 엔저 파고를 넘기 위해 일본 현지 판매처를 뚫어 수출물량을 늘리고 국내 판매를 확대했다. 덕화푸드 관계자는 "우리는 제품 경쟁력이 있어 일본 판매처를 늘리거나 내수영업을 강화할 수 있지만 다른 영세업체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고 업계의 절박한 사정을 소개했다.

수산물업체가 수출물량을 내수용으로 돌리면서 유통업계에는 '반값' 참치와 전복, 광어가 등장하고 있다. 수출물량을 내수로 돌리자 공급이 늘어 굴은 산지시세 기준 최근 ㎏당 2500원으로 지난해(4500원) 대비 44%나 급락했고, 키조개도 ㎏당 1000원으로 33%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