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자로 분류 법 구제 열외
- 일감 준 업체 도산 땐 막막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협력업체의 물량팀(재도급 일용직)에 이어 장비업자들도 잇따라 임금(작업비) 체불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 가뜩이나 도급 물량이 준 데다 조선소 원청 측이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하는 바람에 협력업체는 돈줄이 막힐 수밖에 없고 이 협력업체에서 재도급받은 장비업자 등은 밀린 작업비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최일선 조선 근로자인 물량팀, 장비업자에게 구조조정의 불똥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경남 거제의 대형조선소 협력업체에 25t 크레인 장비를 투입한 박모(53) 씨는 최근 4개월 치 작업비 2000여만 원을 받지 못했다. 해당 협력업체에서 3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박 씨는 1개월가량 대금이 밀린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수개월째 작업비를 받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며칠 전에는 결국, 이 협력업체에서 크레인을 철수하고 다른 작업장을 찾고 있으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또 다른 협력업체에 트레일러 장비를 투입한 최모(48) 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최 씨도 이 협력업체로부터 2개월 치 1000여만 원의 작업비를 받지 못했음에도 마땅히 갈 곳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일하고 있다.

경영난에 직면한 조선소 원청은 원가 절감 차원에서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예년보다 30%가량 납품단가를 깎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장비업자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협력업체 직원의 경우 임금 체불 시 체당금(회사의 도산으로 퇴직한 근로자가 사업주로부터 임금 등을 받지 못하면 국가가 사업주를 대신해 지급하는 임금) 등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나, 장비업자는 일반사업자로 등록돼 이러한 구제 혜택조차 받을 수 없다. 일하던 협력업체에서 밀린 작업비를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고 협력업체가 도산하면 그동안 받지 못한 작업비를 고스란히 떼일 처지다. 이 때문에 크레인 장비업자 박 씨는 일하던 협력업체의 부도 위기설이 나돌자 요즘 노심초사하고 있다. 밀린 작업비를 제때 받지 못해 빚을 내 생활하는 상황에서 협력업체마저 문을 닫으면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양대 조선소를 낀 경남 거제지역 조선 근로자 8만5000여 명 중 물량팀은 2만 명 이상, 장비업자는 1000명을 웃돌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 관련 장비업자 대부분이 소형 크레인이나 특수차량 한 대 정도를 운영하는 영세업자다. 이들 중 상당수가 협력업체에서 죽도록 일만 하고 수개월째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조선업종 구조조정의 최대 피해자"라고 말했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