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대비 제약되며 이용 늘어난 듯
- 상품권깡·돈세탁 등 악용 우려

2일 부산지역 한 백화점 인근 상품권 판매전문점. 소위 '상품권 깡(현금화)'을 하면 최대 얼마까지 줄 수 있냐는 문의에 직원은 "금액 제한은 없다"라며 여러번 받아 본 질문인 듯 자연스럽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는 "소액일 경우 7%를 선 공제하고, 백만 원 단위 이상의 고액일 경우엔 5%까지 봐 드려요. 1000만 원 가져오시면 950만 원 받아가실 수 있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기업체 등에서 고액 '상품권 깡'을 하면 혹시 문제 되지 않겠냐는 조심스러운 물음에도 "지금 여기서 바로 현금화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소비 불황에도 지난해 시중에 풀린 상품권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9조 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권은 금융당국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어 돈세탁 등 불법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기업의 상품권 구매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돼 법망을 피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2일 한국조폐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백화점 대형마트 정유사 등에서 발행한 상품권 규모는 9조552억 원으로 전년(8조355억 원)보다 1조197억 원(12.7%) 증가했다. 상품권 발행 규모가 9조 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상품권 발행 규모는 2011년 4조7800억 원에서 5년 만에 배 가까이 커졌다. 10만 원권 초과 고액상품권 발행액은 지난해 5조2083억 원으로 57.5%를 차지했다. 특히 액면가가 50만 원 이상인 고액의 유통사 상품권 발행액은 1조3570억 원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상품권은 1만 원권 이상 상품권을 발행할 때 인지세를 내는 것을 제외하면 금융당국 감독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한국은행의 통화량 산정에서도 제외된다. 사용자, 시점, 용처 등을 파악할 수 없어 리베이트 뇌물 기업 비자금 조성 등 지하경제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산 뒤 이를 되팔아 현금을 챙기는 상품권 깡으로 적발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3개월 간 법인카드로 구매한 백화점 상품권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일각에선 기업이 접대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할 경우 청탁금지법 한도에 묶이게 되니 제약이 적은 상품권 이용을 늘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을위한시민연합 관계자는 "상품권 관리·감독 부재와 음성적 거래로 악용하기 쉬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상품권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승희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