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위산업체 하청업체로 창업
- 화포의 진동 잡는 부품 개발
- 납품하던 회사 부도로 폐업

- 15년간 월급쟁이로 일했지만
- 만족 못하고 집팔아 다시 사업
- 모터·펌프 통합한 일체형 모델
- 가성비 좋은 유압변속기 완성

- 中 농기계 제작업체 수주 확보
- 동남아·미국시장도 진출 계획

젊은 시절 좇던 꿈은 아쉽게도 실패했다. 50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기술은 가지고 있었고, 기회를 찾아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농기구용 유압변속기를 개발한 이노텍 엄철현(57) 대표의 이야기다. 젊은 시절 사업으로 성공하겠다던 포부는 어느덧 개발 부품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꿈으로 바뀌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세계 농기계 시장의 성장세를 보면 그저 꿈으로만 그치지 않은 듯싶다. 매출은 생기지 않았지만, 지역 엔젤투자와 정책 지원 자금을 수혈받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노텍 엄철현 대표가 유압변속기 공정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어떻게 재기했나

엄 대표는 1986년 방위산업체 하청업체로 창업을 시작했다. 화포의 진동을 잡는 부품을 개발해 1990년대 연간 8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불어닥치며 엄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사업을 접어야 했다. 납품회사가 부도났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을 퇴사하고 받은 퇴직금 300만 원으로 차린 회사였다.

김수환 이사가 제품군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이후 엄 대표는 친구의 공장에 공장장으로 들어가 일을 이어갔다. 사업 전에는 삼성중공업과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설계부에서 일을 한 경험을 살렸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꿈을 접지는 못했다. 월급쟁이 일에 만족하지 못하던 엄 대표에게 아내는 아파트를 판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2012년 당시 아파트 매각 대금은 2억5000만 원. 이 돈으로 엄 대표는 평소에 구상하던 부품 개발에 착수했고,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부부는 원룸으로 이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산으로 걸린 돈이 엄 대표의 발목을 붙잡았다. 각종 정책 자금을 지원받아 사업을 시작해야 하지만, 과거에 물린 자금의 그림자가 엄 대표를 괴롭혔다. 엄 대표는 "재창업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파산면책 신청을 해야 했다"라며 "6개월이면 끝날 일이지만, 기관에도 묶인 돈이 있어 기간이 길어지자 법정에서 눈물로 호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소회했다. 다행히 당시 재판장이었던 젊은 판사는 엄 대표의 사정을 고려해 2014년 11월 파산면책을 승인했다.

현재 이노텍은 종업원 5명을 꾸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 벤처투자업계도 이노텍의 기술력을 인정해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엄 대표는 하루빨리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를 꿈꾸고 있다.

■기계부품, 일본 기술력 따라잡다

이노텍이 개발한 유압변속기는 농기계에 들어간다. 특징은 모터와 펌프를 통합시킨 일체형 모델이라는 점이다. 두 개의 핵심 부품을 결합했지만, 크기는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장점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농기계 핵심 부품을 새로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모터가 농기계를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펌프는 농기구가 수확이나 이양 등 농사일을 하게 만드는 부품이다. 두 가지 핵심 부품을 결합하면서, 농기계 완제품의 비용은 현저히 줄어든다.

부품 자체의 기술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회당 회전력과 진동수, 소음 등 모든 면에서 일본에서 만든 농기계용 유압변속기와 비슷하거나 뛰어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검증은 건설기계부품연구원이 맡았다. 높은 내구성과 압력 등은 이미 국내 농기구 부품에서 보이고 있으나, 이노텍은 여기에 더해 크기와 소음을 줄이고 펌프 용량은 끌어올렸다. 부품에 들어가는 원재료 역시 동합금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했다. 기름 누출을 막는 한편, 수확물이 기계에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기준 매출액이 2억9100만 원인 이노텍이 노리는 곳은 중국 시장이다. 이미 중국의 농기계 제작업체로부터 제품 1000개에 대한 수주를 마쳤다.

엄 대표는 "수주량 1000개를 달성하면 해당 업체에 4000개 추가 공급까지 할 수 있다"라며 "다만 생산 자금이 없어 현재 정책 자금과 지역 엔젤투자업계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꿈 포기하지 말아야"

엄 대표가 정의하는 기업가 정신은 바로 '꿈'을 이루는 것. 오랜 시간 숙성한 엄 대표의 꿈은 제품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 농기계 시장은 2003년 60억 달러에서 폭발적으로 성장, 내년 436억 달러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시장 역시 연평균 6.9%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시장 전망이 밝은 편이다.

엄 대표는 "이미 인도와 미국 등에서 우리 제품을 유통할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며 "이노텍 제품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베트남은 물론 미국까지 진출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민건태 기자 fastmk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