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 후 2012년 밸브회사 설립
- 설비 없어 OEM으로 제품 생산
- 성장에 한계…폐업 뒤 재창업

- 미국·독일 조선기자재업체 독점
- 밸브 조정 기술에 3년 여 매달려
- 28줄 암나사 가공 비결 터득
- 원격제어장치 시제품도 만들어
- 마지막 관문 센서 개발 눈앞
- 연내 상용화·조선사 납품 기대

산업용 밸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머리' 역할은 '액추에이터(Actuator)'가 맡는다. 국내에는 드문 기술로, 조선업계에서만 한해 1000억 원 규모로 수입하고 있다. 나사 가공 기술부터 원격제어기술까지 들어가는 복잡한 기술로 통하는데, 부산의 재창업자가 제품 국산화에 성큼 다가섰다. 에너콘 이명용(54) 대표는 올해 안 상용화를 목표로 액추에이터의 원천기술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에너콘 이명용 대표가 자체 개발한 암나사 제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조선산업 1000억 시장 뚫는다

산업용 밸브는 유압 또는 공압 등의 동력원을 바탕으로 힘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이 대표는 유학을 거쳐 밸브회사의 연구소장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2012년부터 2년 동안 밸브회사를 설립했다. 폐업 이후 뛰어든 분야는 바로 '액추에이터' 기술로, 밸브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액추에이터에 이 대표는 가능성을 걸었다.

국내에서 액추에이터를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나사 가공 기술부터 밸브를 제어하는 센서나 원격제어기술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우선 나사 가공 기술부터 개발했다. 이 대표는 "수나사는 가공이 밖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국내 기술 기반 안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반면 암나사는 가공을 나사틀 안에서 해야 하므로 독일과 일본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설계 지식을 총동원해 암나사 가공 기술을 터득했다. 28줄로 이뤄진 암나사 개발로 밸브가 360도 회전할 때 더 많은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나사다. 이 나사는 밸브와 결합해 효율적인 움직임을 실현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이후 액추에이터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주목한 것은 조선산업. 선박 내 평형수를 실은 탱크 내에는 1000개에 달하는 밸브가 설치돼 있다. 이들 밸브가 각자 다르게, 더 세밀하게는 각자 몇 도씩 회전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액추에이터의 역할이다. 따라서, 밸브의 회전값을 전달하는 센서 개발과 밸브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원격제어장치 개발이 중요하다.

이들 기술은 현재 미국과 독일의 조선기자재 업체가 독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액추에이터를 만들어도, 결국에는 외국계 회사들이 원격제어장치의 프로토콜을 개방하지 않아 시장을 뚫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하나의 온전한 액추에이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체 원격제어기술과 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가로 세로 3㎝ 크기의 원격제어장치를 만들는 데 성공했다. 486 컴퓨터 성능을 지녔으며, 밸브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로 이미 시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센서 개발이다. 이 대표가 고안 중인 방안은 센서에 스프링을 넣은 뒤 압력을 가해 스프링이 밀리는 정도를 분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자를 연결해 압력에 따른 저항의 정도를 측정한 뒤 밸브의 회전치를 분석한다. 센서로부터의 회전치는 원격제어장치를 거쳐 밸브가 어느 정도로 회전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이 대표는 "1000억 원 규모의 국내 조선 시장을 뚫을 수 있다"며 "납기와 A/S는 물론,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해 국내 물량의 상당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설비있어야 회사 큰다

	부산 북구 지식산업센터 소재 에너콘에서 직원들이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이 대표는 2014년 에너콘을 설립하기 이전인 2012년 밸브회사를 차렸다. 당시 이 대표는 밸브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대기업에 밸브를 납품했다. 제품 생산은 OEM으로 맡겼다.

하지만 회사가 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유는 설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원청업체의 하청업체로 정식 등록되기 위해서는 제조 설비가 있어야 한다. 설비를 갖추지 못해 원청업체가 비상시에 쓸 수 있는 소량의 물품을 계약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소회했다.

이 대표는 이전 회사를 폐업한 뒤 곧바로 에너콘을 설립했다. 재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 전환이 필수다. 이 대표는 그동안 밸브업계의 고민이었던 액추에이터 분야에 장래를 걸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

현재 부산 북구 금곡동 소재 지식산업센터에 40평 규모의 사무실을 차린 이 대표는 앞으로 나사 가공 설비를 시작으로 각종 생산 설비를 갖춰나갈 방침이다.

민건태 기자 fastmkt@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