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의무화가 신조 선박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시행되지만 정부 기관의 미온적 대처로 업계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기술 승인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기술 승인에 관여하는 전문 위원 풀이 좁아 승인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설치 의무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이를 승인하는 정부 기관의 행정 처리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지역 A 업체 관계자는 "조선 산업 불황 속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기대감이 있지만,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기술 승인 처리가 늦어져 업계 전반적으로 고민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선박평형수 처리장치를 개발하는 업체는 부산에만 10개사가량 모여 있다.

선박평형수 처리장치는 바닷물에서 발생하는 모든 미생물을 걸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형식승인 과정 역시 복잡한 절차로 이뤄지고 있다. 현행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관리법에 따르면 선박평형수 처리설비 형식승인업무 등은 해수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기술 업무 처리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등이 다루고 있다. 이들 기관은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선박평형수 처리장치의 기술력을 시험 및 검증하고 있다. 문제는 4인 이상 체제로 운영하는 과학기술전문위원회에 대해 KIOST에서 전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B업체 대표는 "10년 전 조직된 위원회 소속 전문위원은 총 9명으로, 이들 중 정족수 4명을 충족하면 위원회를 연다"며 "위원 인력 풀(Pool)이 좁아 KIOST와 위원들이 절대적인 갑의 지위를 누린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의 관련 기관 관계자 의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관계자는 "선박의 경우에는 기관사 출신 연구원 등 미생물 처리 기술 등 화학적 기술뿐 아니라 기계 등 분야 전문가도 포함돼야 하지만, 연구위원 구성 면면을 따지면 지나치게 미생물 분야에 치중해 있다"며 "심사기관장이 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점도 공정치 못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B 업체는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개발에 4년 동안 70억 원에 육박하는 개발비를 쏟아부었지만, 기술 인증 과정이 길어지며 애를 태우고 있다. 특히 기존 제품을 업그레이드시킨 제품에 대해 최근 기술 인증을 받으려 했으나, 위원회가 제품에 들어가는 특정 부품은 특정 업체가 개발한 제품을 써야 한다고 요구해 이중으로 KIOST 측에 시험 인증 수수료를 지급해야 되는 문제를 떠안았다. 시험 비용은 국내에서만 총 10억 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국제해사기구와 미국연안경비대(USCG) 승인까지 얻으려면 42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KIOST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KIOST 관계자는 "국제해사기구가 규정하는 범위 내에서 승인하며, 부품 변경에 대한 사유 역시 국제해사기구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결국, 국내 기관 및 정부가 변경 여부를 검토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문제와 관련, 최근 해양수산부가 감사원의 감사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생태 화학 생물 기계 등 선박평형수 처리장치 관련 전문가가 국내에 많이 없는 실정"이라면서도 "KIOST는 형식승인 기관이 아니며 승인 기관의 품질 관리와 관련한 독립기관이다. 위원회와의 유착이 형성될 수 없는 구조"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