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업체는 원전 부품 ‘발품’
- 매출 도움 안 돼 시간만 낭비
- “충분한 시장조사 후 진입해야”

불황을 겪고 있는 조선해양기자재 업계가 위기 탈출을 위해 사업다각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적잖은 업체가 현실적인 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충분한 준비 없이 다른 업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조선업 장기 불황으로 인력을 대폭 감축한채 운영하고 있는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의 한 조선기자재 공장. 국제신문DB

경남 진주에 본사를 두고 선박에 사용되는 주방기구를 생산하는 조선기자재 업체 A사는 사업다각화로 인한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지난달 창원지방법원에 기업회생절차개시신청을 하고 개시 결정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4일 확인됐다.

1986년 설립된 A사는 선박용 주방기기를 국내 대형 조선소 등에 납품은 물론 수출까지 해왔다. 국내 조선업이 수주절벽에 부딪히면서 일감부족에 시달리자 선박용 주방기기 외에도 아파트 등에 들어가는 가정용 주방기기 분야에도 진출했다. 문제는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는 한 건설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시작됐다. 총 90억 원 규모의 주방기기, 싱크대 가구 등을 미리 제작해 지난해 10월부터 납품했다. 하지만 대금 결제일까지 버티는 게 만만찮았다. 지난달 30일이 건설업체로부터 대금을 받는 날이었지만 자금난에 시달리던 A사는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당좌거래정지로 부도 상황을 맞았다. A사 대표는 “해당 건설업체가 협력업체를 끌어안고 함께 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금융권으로부터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조선해양기자재 업계에서는 사업다각화를 추진할 때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장기 불황 속에 빠지면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업체가 많다. 하지만 자금 상황 등이 좋지 않은데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더 어려운 상태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다 시간만 낭비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사하구의 조선해양기자재 업체 B사는 지난해 원전 부품 쪽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전국의 원전, 발전소 등을 다니면서 각종 박람회, 상담회 등을 찾았지만 눈에 띌만한 실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B사 관계자는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매출에는 큰 도움이 안 돼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전과 발전소에 기존 납품 업체들도 버티고 있어 진입 장벽도 높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는 분야에 대한 충분한 시장 조사나 노하우 등이 있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산경제진흥원 신산업육성팀 황문성 팀장은 “해당 기업만의 핵심 역량을 유지한 채, 다른 분야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사업다각화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