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를 빛낸 수많은 건축가 가운데 조형물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경우는 흔치 않다. 구스타브 에펠과 조지 페리스가 영광의 장본인이다. 에펠은 1889년 엑스포 역사상 최고의 유산인 ‘에펠탑’에, 페리스는 1893년 시카고박람회 때 세운 대관람차 ‘페리스 휠’에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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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파리 박람회장에 건설 중인 에펠탑 모습. 오른쪽은 1893년 시카고 박람회장에 세워진 페리스 휠. |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동시대 철공에서 재능을 발휘한 ‘철의 달인’으로 세기적 상징조형물을 원한 박람회 공모에 당선됐다. 주변의 우려와 반대를 무릅쓰고 불굴의 의지로 세계 초유의 구조물을 만들어낸 것도 닮은 꼴이다.
하지만 둘의 성취는 성격이 다르다. 에펠탑은 불멸의 기념탑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페리스 휠은 전 세계 놀이·관람 시설의 원형이자 보통명사로 남은 채 실물은 해체됐다. 개인적 삶도 상반된 행로를 걸었다.
에펠은 1866년 파리박람회에 철공 기술자로 참여하며 엑스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다리, 돔 등 철골 구조물을 도맡아 건설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렇게 쌓은 명성으로 에펠탑 프로젝트에서 안전과 미학을 둘러싼 숱한 비판과 저항을 제압했다. 에펠은 부와 명예를 다 얻은 건축가로 91세까지 장수했다.
반면에 페리스는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투자자까지 유치하며 밀어붙인 ‘빅 휠’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분쟁에 시달렸다. 운영수익을 둘러싸고 박람회 조직위와 소송을 벌였고, 특허 출원을 소홀히 한 탓에 대형 유원지 등에 설계도를 도용당했다. 결국, 큰돈을 벌기는커녕 다시 공사 현장을 전전하다 37세에 급성 장티푸스로 요절했다. 사망 1년 후 ‘뉴욕 타임스’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 휠’의 설계자 페리스의 화장된 유골이 비용을 치르지 못해 장례식장에 보관돼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