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스타트업들의 돈줄 역할을 했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예금 인출 사태와 주가 폭락으로 끝내 파산했다. 역대 미국에서 파산한 은행 가운데 2위 규모다. SVB 여파로 뉴욕 증시는 하락했고 투자자들이 채권과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으로 대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해 글로벌 금융 시장이 혼돈에 빠졌다.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현지시간)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으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한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FDIC는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이라는 이름의 법인으로 SVB의 기존 예금을 이전하고, SVB 보유 자산의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SVB의 총자산은 2090억 달러, 총예금은 1754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16위 은행인 SVB가 문을 닫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1983년 설립돼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SVB는 신생 기술기업 전문 은행이다. 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 지 불과 이틀도 안 돼 무너졌다.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이 줄어들어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매각해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전날 발표가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 1년간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려 기술기업들의 돈줄이 말라버리는 바람에 SVB로 유입되는 자금이 끊겼고, 이로인해 과거 비싸게 샀던 채권을 낮은 가격에 판 것이다.

뉴욕증시는 SVB 사태로 은행주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345.22포인트(1.07%) 하락한 3만1909.64로 장을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56.73포인트(1.45%) 떨어진 3861.59로,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99.47포인트(1.76%) 떨어진 1만1138.89로 거래를 마쳤다.

투자자들은 SVB 사태로 불거진 은행권 우려를 주목했다. 특히 유동성이 취약하거나 포트폴리오가 편중된 전문 지역 은행들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졌다. 시그니처뱅크와 퍼스트 리퍼블릭 뱅크, 팩웨스트 뱅코프의 주가가 각각 22%, 14%, 37% 이상 추락했다.

SVB 사태 여파는 미국 밖으로도 퍼졌다. 홍콩 항셍지수는 3.04%,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1.67%,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4% 각각 하락했다. 아시아 증시는 SVB 파산 조치에 앞서 장을 마쳤으나, 이 은행에서 예금 인출 사태가 가속화하고 미국 4대 은행의 시가총액이 전날 520억 달러 증발했다는 소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와 전문가들은 SVB 사태가 대형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낮다고 예상했으나 투자자들은 미 국채와 금을 비롯한 안전자산으로 대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대표적 안전자산 중 하나인 금이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4월 인도분 금은 온스당 1.8%(32.60달러) 오른 1867.2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