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거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 행위 등을 막기 위해 보다 강화된 책임을 부여하는 한편 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상한도 높이기로 했다.

지배적 플랫폼의 반경쟁 행위를 차단해 시장 질서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말 추진 계획을 밝힌 이후 업계 반발에 직면했던 ‘플랫폼법’은 결국 제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방침이 정해졌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온라인 중개 판매의 정산 기한을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룡’ 플랫폼 규제한다지만…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이 담긴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 방향’을 9일 발표했다.

우선 공정위는 변화 속도가 빠른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 폐해에 신속·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독과점 플랫폼이 경쟁 플랫폼의 시장 진입을 저지하거나 시장에서 몰아내는 반경쟁 행위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이에 공정위는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배적 플랫폼의 반칙행위에 대한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고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주로 담기로 했다.

규율 대상이 되는 지배적 사업자는 ‘사후 추정’ 방식으로 정한다. 이는 공정위가 당초 플랫폼법을 통해 추진하려던 ‘사전 지정’ 방식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법 위반 발생 이전에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지정하는 대신, 위법 행위가 발생하면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사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사후 추정 요건은 ▷1개 회사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1000만 명 이상 또는 ▷3개 이하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2000만 명 이상인 경우다.

다만 두 가지 요건에 해당하더라도 플랫폼 관련 직·간접 매출액(계열회사 포함)이 4조 원 미만인 회사는 제외된다. 이는 스타트업 등의 규제 부담 등 우려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는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주요 플랫폼의 매출과 시장 점유율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관련 위법행위 발생 시 사후 추정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볼 것”이라고 밝혔다.

규율 분야는 ▷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 등 6개 서비스다. 규율 내용은 ‘4대 반 경쟁행위’로 불리는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요구 등이다.

아울러 공정위는 법 위반 억제력 확보를 위해 과징금 상한을 기존 관련 매출액의 6%에서 8%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이날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개정을 공식화하면서 지난해 12월부터 추진돼 온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은 사실상 무산됐다.

공정위가 발표한 ‘사후 추정’ 방식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매출 기준과 점유율 요건이 설정되면서 쿠팡과 배달의민족(배민)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들은 규제를 피해 갈 가능성이 커졌다.

●온라인 판매대금 정산 단축

한편 공정위는 티메프 미정산 사태 방지를 위한 입법 방안도 제시했다. 우선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중개 거래 플랫폼을 ‘대규모 유통업자’에 포함시킨 뒤 대금 정산 및 별도 관리 등 의무 조항을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법 적용 기준 및 규율 내용은 업계의 우려를 고려해 복수 안을 마련했다.

우선 법 적용 대상 세부 기준 1안은 연 중개 거래수익 100억 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금액 1억 원 이상이다. 2안은 중개 거래수익 1000억 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금액 1조 원 이상으로 완화된 기준이 마련됐다.

정산 기한과 관련해서도 1안은 구매 확정일로부터 10~20일 이내, 2안은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로 제시됐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상 전통 소매업 정산 기한은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 이내다.

공정위는 “향후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9월 중 대규모유통업법 개정 관련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