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企 환리스크 관리 안해 직격탄
- 재계 “조속한 국정 안정화 절실”

국내 기업들이 초유의 ‘3각 쓰나미’에 직면했다. 미국 트럼프 신정부 출범과 탄핵 정국에 고환율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에 빠졌다.

29일 서울 명동 환전소에서 한 관광객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경기 침체와 트럼프 2기 출범이 맞물려 불확실성 파고를 극복하려던 와중에 탄핵 정국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맞닥뜨렸다. 내수 부진 장기화와 관세 인상 우려에 정국 불안정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내년에는 어떤 위기가 닥칠지조차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탄핵 정국에 기업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이슈는 ‘원/달러 환율 급등’이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 1480원을 넘어서면서 기업 수익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기업은 정국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경제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내년 사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1400원 안팎을 기준으로 내년 사업 계획을 구상해온 기업들은 환율 상승을 고려해 보수적으로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환율 변동성과 함께 관세 확대 우려도 큰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매기는 10∼20%의 보편적 관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중소기업은 더 큰 위기 상황이다. 대기업보다 환율 예측과 대응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8월 수출 중소기업 304개 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환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49.3%를 차지했다. 특히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판매는 내수에 집중해 온 중소기업들이 최근 환율 급등에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K-뷰티’로 수출에 날개를 단 화장품 업계 역시 환율 급등 피해가 불가피하다.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대응하더라도 선물, 보험 등 환헤지(환 변동 위험 회피) 상품 활용을 통한 전략적인 대응 방안은 부재한 편이다. 대체로 단가 조정이나 원가 절감, 대금 결제일 조정 등 간접적인 대응에 나서는 데 그쳐 환율이 급변하면 고스란히 환 변동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기업과 납품 계약을 맺거나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단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기 때문에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즉각적으로 납품 단가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부산의 한 철강 유통업체는 “약정된 단가로 납품하는 계약 구조상 원가 상승분을 즉각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한 수산물 유통업체도 “수입 비용 증가분을 그대로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소비자 부담이 커져 매출이 감소한다”고 우려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서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측면에서 환리스크(환차손익)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25% 수준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환차손은 약 0.36%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재계는 내년도 신년사에서 위기 대응을 위해 현재의 정국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기업들이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조속한 국정 안정화가 절실하다. 민생과 관련된 정책만큼은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