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3일 퇴임하며 헌법재판관 6년간의 임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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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연합뉴스 |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지난달 22일 열린 16차 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이 "강일원 주심 재판관은 국회 탄핵소추인단을 편드는 수석대리인", "법관이 아니다", "헌재 자멸의 길", "이정미와 권성동(국회 소추위원)이 한편을 먹고 뛴다" 등 재판부를 향한 도를 넘는 발언을 내놓자 강력한 소송지휘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2006~2012년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김종대(69·사법연수원 7기) 변호사는 "재판부가 참고 인내하면서 파탄을 막았다"며 "이정미 권한대행이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후배지만 원숙한 인격을 보여 존경심이 일었다"고 말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사건 주심을 맡아 찬성 의견을 내기도 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당시에는 법외노조가 맞다는 의견을, 간통죄 폐지 사건 당시에는 존치 의견을 낸 바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1962년 울산 생으로 마산여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후 1984년 제26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제16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198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한 이후 인천지방법원 판사, 수원지방법원 판사, 서울가정법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헌법재판소 역사상 최초로 소장 권한대행을 두 번이나 맡은 재판관으로 기록됐다.
이정미 헌재재판관은 앞서 2013년 이강국(72·사법시험 8회) 당시 헌재소장 퇴임 후 약 3개월간 권한대행을 맡은 바 있다.
또한 전효숙 재판관 이후 두 번째 여성 헌법 재판관이며 최연소인 49세에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됐다.
헌법재판관 취임 100일 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 학창시절 꿈은 '수학교사'였다.
그러나 고3 시절인 1979년 10.26 사태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모습을 보고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고민하다 법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역사적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인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출근 때 다소 긴장한 탓인지 헤어롤 2개를 깜빡하고 빼지 않은 채 출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세월호 사고 당시 공들여 머리를 손질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하며 "역시 박근혜 따위와는 수준이 다르다", "국사에 중대사안이 있으면 머리 말다가도 이렇게 뛰어나오는 거다"라는 네티즌들의 긍정적 반응이 쏟아졌다.
탄핵 사유를 조목조목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러나" 4회, "그런데" 3회 등 앞뒤 문장의 내용을 뒤집는 접속사가 자주 나와 탄핵 인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들었다놨다 하기도 했다.
결정문 초반에는 탄핵사유로 인정할 수 없는 사유를 먼저 읊었으나 후반부에 결정적인 반전을 이뤄내며 결국 탄핵이 인용됐다.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