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을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것으로 보는 캐나다 국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일 텍사스와 조지아주 등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경선에서도 선두를 달린 트럼프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트럼프의 선전에 캐나다 주류 언론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설마가 사람 잡는'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사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미국과 가장 가까운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 국민들의 트럼프에 대한 호감도는 높지 않다. 그가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쏟아낼 때마다 캐나다인들은 조소에 가까운 비판이 쏟아냈다. 심지어 토론토와 밴쿠버 등에 부동산 개발업자 트럼프가 투자해 세운 대형 고층빌딩의 이름에서 '트럼프'란 글자를 빼라는 요구도 있었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캐나다에 재앙이 될 것이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캐나다 제2의 야당인 신민당은 아예 트럼프의 캐나다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며 서명을 받고 있을 정도다. 최근 캐나다의 한 일간지는 "심호흡을 하라. 재앙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종교와 전혀 상관 없는 듯한 세속적 라이프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받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아 불법 이민을 막겠다는 공약에도 네바다주의 히스패닉으로부터 45%나 표를 끌어모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화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어도 승산이 낮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면 실제로 트럼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됐을 때 북미의 정세는 어떻게 변할까. 먼저 트럼프는 최근 캐나다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쌓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트럼프는 '테러와의 전쟁 측면에서 보면 캐나다와의 국경이 더 위험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 캐나다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더구나 그곳은 멕시코와의 국경보다 4배나 길어 장벽을 쌓기도 어렵다"고 답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트럼프를 싫어하는 캐나다 신민당의 정책이 트럼프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점이다. 우선 세계 최대의 경제 블록인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에 반대하는 점이다. 그는 집권할 경우 협정을 파기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한 발 더 나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미국의 이익을 사취하고 있다는 게 트럼프의 생각이다. 재협상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 신문은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트럼프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전했다. 또 트럼프가 캐나다의 의료보험체계(대부분 무상 치료)를 미국의 그것보다 선호한다는 점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B급 영화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오를 것으로 내다본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을 미국의 국방예산이나 축내는 국가로 보는 트럼프가 실제로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박근혜 정부는 그 가능성을 얼마쯤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을까. allell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