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2070년 우임금이 건국
- 허난성 뤄양 옆 옌스 얼리투촌
- 황허강 지류에 생활 터전 잡아
- 470년가량 유지됐다 전해져

- 농경·어로·수렵으로 살았지만
- 타 부족·들짐승 침략 막기 위해
- 토성 만들고 궁전·주거지 조성
- 배수시설에 넓은 정원도 갖춰

- 2010년 중화 뿌리 찾아갔지만
- 얼리투 유지 표지석과 비석뿐
- 옛 터전엔 낡은 유물관만 남아
- 일대 농경지·농가로 변해버려

우리에게 ‘중화’는 뒤에 ‘요리’가 붙으면 가장 익숙하다. 한족이 만주족(여진족)의 지배를 받고, 그 청마저 서양에 휘둘리던 근대에 이르러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한반도에 들어온 중국인이 문을 연 요릿집이 지금까지 번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얼핏 문화적으로 들리는 ‘중화’에 담긴 정치적 함의는 결코 간단치 않은, 섬뜩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 역사의 기원이 되는 하 왕조의 시원지는 이제 드넓은 농경지로 변해 씁쓸함을 보여준다. 요즘 지명으로 허난성의 고도 뤄양(낙양) 인근 옌스시의 얼리투촌으로, 황하강의 지류 뤄허 인근에 위치해 있다.

당초에는 이민족인 만주족의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를 꿈꾸던 쑨원(孫文)을 비롯한 정치가들이 만주족까지 포함한 소수민족을 하나로 아우르기 위해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중심(中)’인 중국이 빚은 가장 ‘빛나는(華)’ 문명이 세상을 주도해왔고, 앞으로도 지속하겠다는 속뜻을 품고 있다. 그런 ‘중화민족’의 주류는 ‘한족’이고, 한족은 중국 역사의 기원이 되는 하(夏)나라 ‘하족(夏族)’이 시원이며 그들이 빚은 문명이 ‘화하(華夏)’라는 것이다. 그럼 하나라와 그 문명의 실체를 만나보자.

■우거진 숲 평원이 ‘城 문화’ 낳았다

	이곳 인근의 지형도.

허난(河南)성 고도 뤄양(洛陽)시와 동쪽으로 경계를 면한 옌스(偃師)시의 얼리투촌(二里頭村)이 현장이다. 유적지 옆을 흐르는 뤄허(洛河)는 북으로 10㎞쯤 떨어진 황허의 지류다. 모든 인류의 삶터가 내(川)든 강이든 물과 가까이 있듯 하의 터전도 유량이 풍부한 낙하를 곁에 두었다. 황허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강이지만 한 번씩 홍수가 나면 모든 것을 뒤집어엎기에 멀리 떨어진 지류 쪽이 훨씬 안정적 터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1959년부터 발굴을 시작한 얼리투 유지(遺址)는 2.5㎞×1.5㎞ 면적으로 약 100만 평이 조금 넘는 규모이다. 사방을 토성으로 둘러싸고 궁전, 일반주거지, 제사구역, 묘역, 청동기제조장 등으로 구역이 나눠져 있다. 궁전 건축물 토대면적은 베이징 고궁(古宮)의 태화전(太和殿)과 맞먹는 규모이고 체계적인 배수시설도 갖추었다. 궁전 앞에는 넓은 정원이 있고 사방이 회랑으로 연결돼 있었다. 물론 아직 기와까지 갖추지는 못한, 짚으로 지붕을 인 허술한 형태지만 그 규모나 형식만큼은 후대 궁전의 틀을 갖추었으니 가히 중국 궁전 건축의 효시라 할 만하다.

	하나라 시원지 얼리투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현장 인근 문패도 없는 낡은 단층건물 유물보관소에 보관돼 있다. 하나라의 토기들, 고대 유적지 대부분에서 발굴되는 비슷한 형태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성이다. 성은 제법 견고한 토성(土城)이고, 그 안에 지도층과 일반이 모두 거주하는 형태였다. 그 자체로 하나의 ‘나라’ ‘국(國)’이 되는 셈이다. 유지에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모두 지평선이 가물거리는 평원이다. ‘國’은 ‘울타리(城)’ 안에 ‘창(戈(과), 무기)’을 갖춘 뜻이라고 한다.

공식적인 중국왕조연대표에 따르면 하나라는 기원전 2070년~기원전 1600년경 470년가량 유지됐다. 당시 지구는 제1차 온난기(기원전 3000년∼기원전 1000년)에 해당돼 온난 습윤한 기후였다. 오늘날 허난성의 메마른 평원이 아니라 사슴, 노루는 물론이고 코뿔소, 호저(아프리카 바늘두더쥐) 같은 열대동물들이 살던 우거진 숲의 땅이었다. 당시의 주된 경제활동이던 농경, 어로, 수렵에는 적합했지만 당장 사납거나 독을 품은 짐승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더 두려운 것은 같은 사람의 집단, 즉 다른 부족의 침략과 약탈이었다. 지켜줄 방어벽과 경계관찰이 용이한 높은 무엇이 필요했고 그것이 성을 쌓는 문화를 낳았다.

또한 돌보다 황토가 풍부한 현장의 자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토성문화도 발전했다.

■사마천이 세운 중국 역사의 뼈대

그런데 얼리투의 성과 궁전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닐진데 오직 하나라가 중국의 기원이라면 이전과 주변의 발전과정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문제의 기원은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년~기원전 85년)의 ‘사기(史記)’였다. 그는 하나라가 망하고 1400년도 더 지난 한(漢)나라 시대에 태어나고 살았던 사람이다. 물론 이전에도 ‘좌전(左傳)’ ‘국어(國語)’ ‘전국책(戰國策)’ 같은 역사서와 제자백가의 기록 등이 있었고, 구전되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편찬한 ‘사기’는 중국 최초의 기전체 역사서로 공인돼왔다. 그로부터 중국의 기원은 하나라이고, 중국민족의 뿌리는 하족이며, 중국문명의 시원은 화하문명으로 굳어진 것이니 사마천과 ‘사기’가 위대한 것인가, 역사로 긍정하고 지켜온 사실이 위대한 것인가.

그처럼 역사서에 기록은 있지만 실제 하나라가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전 전설시대의 연장이 아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얼리투 유적이 발견되고, 2000년 11월 9일 중국관영 신화사(新華社)통신을 비롯한 주요 언론이 ‘하·상·주 연표’의 정식 공표를 보도하면서 중국 역사 기년(紀年)은 이전보다 1229년 앞당겨진 기원전 2070년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른바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의 결과였다. ‘단대’는 하·상·주 3개 고대왕조의 시대를 구분한다는 뜻으로 후속 중화문명탐원공정, 동북공정 등과 그 궤를 같이하는, 중화주의의 근거를 확고히 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쓸쓸하구나, 허망하도다! 중화의 뿌리 ‘화하제일왕도’여!

하의 시원지, 그 대단한 현장이 참으로 궁금했지만 10년쯤 흐른 뒤에서야 마침내 찾아갔다. 먼저 맞아준 것은 커다란 돌덩이에 새긴 ‘얼리투유지’ 표지석과 ‘화하제일왕도(華夏第一王都)’ 비석이었다. 하지만 그뿐, 뤄허를 낀 드넓은 농경지와 드문드문 보이는 농가가 전부였다. 옛 터전을 아는 사람도 드물어 한 시간여를 물어물어 겨우 관계자가 있다는 곳을 찾았는데 문패도 없는 낡은 단층건물이 유물보관소였다. 다행히 지키는 사람은 친절해 보관 중인 유물을 보고 사진도 몇 컷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유지 현장이 어딘지 물어보니 바로 눈앞에 펼쳐진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농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덤덤하게 유적 발굴이 끝나고 농민에게 땅을 돌려주었으며, 그들은 다시 흙으로 메워 농사를 짓는 것이라니…. 어쩌면 이제는 또 달라졌을지 모른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들어서고 화하문명과 중화민족의 기치가 더욱 높이 휘날리니 어떤 성역화가 이뤄졌을지도. 하지만 어쩌랴, 이미 그 민낯을 보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아무튼 사마천은 ‘사기’에서 하나라 이전의 이야기는 ‘오제(五帝)본기’에 아우르고 ‘하본기’를 ‘하우, 명왈문명(夏禹, 名曰文命)’으로 시작한다. ‘하우의 이름은 문명이다’는 것이니 우가 하나라를 세웠고 첫 왕이라는 뜻이다.

우임금이 어떤 이인지는 우리 모두가 아는 바이다. 홍수를 다스리지 못해 우산(羽山)으로 추방되어 죽은 아버지 곤(鯀)을 이어 천하의 치수를 맡게 된 이. 13년 동안 집 대문 앞을 여러 차례 지나가면서 한 번도 들리지 않고 치수에만 매진한 이. 마침내 물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열어 흐르게 하는 소통으로 다스리며 천하 구주(九州)를 개척한 이. 그런 이가 언사로 돌아와 겨우 100만 평 조금 넘는 땅에 나라를 세웠다니,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구주를 개척했다는 것은 곳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니 그들의 삶과 문화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다음 편은 먼저 황허와 그 연변을 알아보는 ‘황허, 그 시원과 연변’이다.

“우 임금, 9개 지역 개척하고 길 뚫으며 물 다스리다”

- 사마천 하본기서 구주개척 평가…한나라 시선 벗어나지 못한 기록

‘아홉 개 주를 개척하고, 아홉 개 큰 도로를 통하게 하고, 아홉 개 큰 못을 축조하고, 아홉 개 큰 산에 길을 뚫었다(以開九州, 通九道, 陂九澤, 度九算)’.

사마천은 ‘하본기’에서 우임금의 구주개척을 그렇게 썼다. 또한 전해오는 ‘우공구주산천지도’를 보면 ‘남월(南越)’로 표기된 윈난(雲南)성과 광시좡족(廣西壯族)자치구, 북쪽의 네이멍구·지린(吉林)성 이북 지역을 제외한 오늘의 중국 전역을 아우른다. 심지어는 세금과 공물까지 정했다고 썼지만 당장 얼리투 하 유지를 보더라도 그럴만한 역량은 결코 아니었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바이지만 하를 뒤이은 상(商)은 오랑캐라 불린,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동이(東夷)족의 나라였다. 다음의 주(周)나라 역시 근원을 추적하면 온전한 한족 정권이라고 보기 어렵다. 백 번을 양보해 한족 정권이었다 할지라도 동주(東周) 이후 춘추전국(春秋戰國) 시기에 벌어진 엄청난 피의 살육전은 한족과 변방의 오랑캐가 뒤엉킨 패권전쟁이었다. 그러니 사마천의 기록은 그가 태어나 살았던 한나라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구주’도 역시 그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우임금의 치수와 구주개척을 아무런 근거 없는 글짓기라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02년 10월, 홍콩의 한 고물시장에서 장방형의 청동기 한 점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에는 ‘대우치수(大禹治水)’라는 글자를 포함한 아흔아홉 자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고 구주개척에 관한 내용도 들어있었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 명문이 있는 청동기는 가장 오래된 3000년 전, 하보다 1000년쯤 뒤에 들어선 주(周)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문자와 명문에 관해서는 뒤에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상나라 시대 갑골문이 등장한 이후 지배층은 특별한 내용을 청동기 등에 명문으로 남겨 기념했다. 발견된 청동기도 어떤 공을 치하해 내리는 그릇인 ‘수공수(遂公盨)’였다.

중국의 전설에도 노아의 방주와 같은 대홍수 이야기가 여러 버전으로 등장한다. 아마 누런 황토의 유사(流砂)를 품은 황허가 홍수를 일으키면 순식간에 수 ㎞가 휩쓸리는 공포가 빚은 전설일 테고, 그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후대의 사가(史家)들이 과장되게 각색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