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 속 촉나라 세상에 알리다

- 1986년 쓰촨성 산싱투이 유적 발견
- 5000~3000년 전 유물로 추정되나
- 중원문화와 닮은 흔적 하나도 없어

# 독자적 유물은 계속 발굴되니

- 사람 키보다 큰 신목 형상화 통천신수
- 하늘과 소통하려는 통천의 관념 표현
- 산해경은 제사법 등 담은 최고 지리서

# 중화문명 범주에 강제로 엮여

- 청동예기 문양 유사함을 꼬투리 잡아
- 황허 영향 받았다는 것은 억지스러워
- 교류가 있었다면 고촉 흔적 보여줘야

어느 날 하늘에서 황금비가 쏟아져 내린다면 그것은 분명 쌍수 들어 환영할 행운이고 축복이다. 쓰촨성 성도 청두(成都)시와 인접한 광한(廣漢)시의 샛강 마무허(馬牧河) 건너편 산싱투이(三星堆) 황금유물도 다를 바 없는 노다지였으니 중국 역사학계는 쌍수를 들면서도 어정쩡한 구석이 있다. 다름 아닌 중국문명의 주류라는 황허문명 즉 중원문화와 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는 특별한 독자성 때문이다.

	황금유적이 대거 발견된 쓰촨성 산싱투이 유적 전경. 산싱투이 박물관 좌측은 샛강 마무허이고, 우측 상단 큰 강이 야즈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유물은 5000~3000년 전의 것이었다. 그러니 5000년 전이라면 하나라보다 앞서거나 맞물리고, 3000년 전이라도 하를 이은 상(은)나라와 비슷한데 그 시기 중원문화 어디에도 그와 닮거나 뿌리라 할 만한 흔적은 없다. 아니, 그 후로도 최소한 황허유역이나 중원에서 닮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잊힌 문화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수 있지만 기원전 20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 임금의 ‘구주도’로 아우르는 중국 역사와 문명의 입장에서 보면 어울리지 않게 불거진 애물의 구석이 있다. 아무튼 산싱투이의 특별한 유물을 더 들여다보자.

■하늘과 소통하는 청동신수

	청동통천신수

2호갱에서는 또 다른 특이한 유물 통천신수(通天神樹)가 발굴됐다. 직경 92.4㎝의 산 모양의 받침대 위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신수 또는 신목(神木)을 형상화한 것으로 그 높이는 무려 396㎝에 이른다. 이는 산 정상에 우뚝 선 나무를 통해 하늘과 소통하는 통천의 관념을 표현한 기물로 짐작된다. 성경에 나오는 ‘바빌론의 탑’과 같이 하늘과 통하려는 세계 다른 곳의 유사한 이야기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통천신수는 3단으로 나뉘어 세 개의 가지가 펼쳐 있다. 각각의 가지 끝에는 꽃이 피어 있고, 꽃 위에는 새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이는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經) 편에 나오는 열 개의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빠진 새 하나는 출토 당시 이미 부러져 있던 꼭대기 부분에 나머지 신조(神鳥)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각 가지의 끝에는 아래로 머리를 향한 기이한 동물의 형상이 있어 하늘과 인간세계를 왕래하는 용(龍)이나 새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산해경’은 동남서북 각지의 산악에 사는 수많은 인면수신(人面獸身)의 신과 신화적 이야기, 제사법, 산물(産物)을 담은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서다. ‘산해경’에 실린 열 개의 해와 신수에 관한 태양신화를 보자.

	나팔좌정 준궤헌 청동여인상

‘탕곡이 있다. 탕곡 위에는 부상이 있는데 열 개의 태양이 목욕하는 곳으로 흑치의 북쪽에 있다. 물 가운데 큰 나무가 있는데 아홉 개의 태양은 아래 가지에 있고 한 개의 태양은 윗 가지에 있다(하유탕곡(下有湯谷) 탕곡상유부상(湯谷上有扶桑) 십일소욕(十日所浴) 재흑치북(在黑齒北) 거수중(居水中) 유대목(有大木) 구일거하지(九日居下枝) 일일거상지(一日居上枝)’.

여기서 탕곡과 흑치는 지명이며, 부상은 고대 전설상의 신목이다. 그런데 ‘산해경’은 ‘세본’ ‘사기’ 등 중원지역에서 나온 정통 역사서와 달리 파촉 지역에서 전해져온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동시대 다른 중국문화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이후 황하유역 문명이 중국문명의 주류가 된 뒤인 한나라 시기 부장품에서 청동신수와 유사한 유물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 또한 사천 지방에 한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청동수면상

■산싱투이 성지는 고촉의 왕도였나

산싱투이는 갱에서 유물만 발굴된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에 마땅한 유지도 있었다.

동쪽 1.8㎞, 서쪽 800ｍ, 갱 인근 남쪽 210ｍ가량의 성벽 유지와 북쪽은 야즈허(鴨子河)를 천연의 성벽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이는 성지(城址)가 그것이다. 전체 규모는 동서와 남북 간 직선길이가 대략 2㎞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이다. 성벽의 높이는 2~5ｍ, 두께는 남아 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5~40ｍ에 이르며, 틀에 흙을 넣고 다진 분단항축법(分段䂫築法)으로 쌓은 것이다. 크기가 다른 여러 채의 가옥 유지와 약 2.6㎢에 이르는 성터 흔적도 발견됐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를 두고 ‘촉왕본기’에 나오는 고촉국의 어부왕(魚鳧王)이나 두우(杜宇)왕, 개명(開明)왕 시기의 도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청두평원의 다른 고왕국과 함께 뒤로 다루기로 한다. 그렇지만 일단 초기 국가의 형태를 갖춘 절대 권력, 즉 왕권의 존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청동뱀

아무튼 번쩍거리는 황금에 밀려 다소 그 빛이 바래기는 하지만 청동기 역시 화려하고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다. 청동신수상, 청동입인상, 청동인두상은 물론 그 밖의 각종 문양에서도 보듯 촉 문화의 유물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자성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전체 무게가 1ｔ이 넘는 유물이 500여 점이나 될 정도이니 주조기술 역시 다른 지역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술독의 일종인 준(尊)이나 뇌(罍) 같은 일부 청동 예기(禮器)는 황허문화권의 그것들과 유사한 형태도 있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고촉국이든 무엇이든 산싱투이 역시 고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중시한 문화였다. 그러나 그 제사 양식은 황금가면으로 알 수 있듯 황허유역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늘과 소통하는 통천신수의 독자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일부 예기의 형태나 문양이 황허유역의 그것과 유사성을 보인다고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중화문명의 범주로 엮는 것은 아무래도 과하다. 문화는 일방적인 전수가 아니라 상호 교류인데 황허유역에는 왜 그 흔적이 없는지 설명부터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 참으로 무겁고도 섬뜩

‘갱(坑)’은 무덤과 같은 구덩이를 말한다. 저 찬란한 유물들이, 제사라는 가장 중요한 행사에 사용했을 성스러운 기물들이, 왜 한 구덩이에 수백 점씩 죽은 듯 묻혀 있었던 것일까.

설(說)은 난무한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라는 제사갱설, 움에 기물을 매장한 것이라는 교장설(窖藏說),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종묘라는 종묘파괴설, 정권이 바뀐 뒤 필요 없는 기물을 매장한 것이라는 설 등등.

기물만이 아니다. 당시 기후 조건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강수량에 다습한 데다 자연환경의 훼손도 심하지 않았으니 상아는 자생한 코끼리에서 얻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바다와는 멀리 떨어진 청두평원에서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분명 바다를 끼고 있는 다른 세력과의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허유력 세력? 아니면 다른 지역의 세력? 다행히 뒤늦게나마 인근의 고대 유적이 하나씩 발견되고 있으니 뒤에 밝혀보기로 하자.

다만, 1986년 산싱투이 유물이 발견될 때까지 어느 기록에도 없었고, 전설처럼 전해진 이야기조차 없어 모두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지 않은가. 아무리 찬란한 문명을 빚고 강력한 세력을 가졌더라도 자신들의 과거를 부인하고 외면해 역사로 간직하지 않는다면 그처럼 멸해진다는 섬뜩한 증언이니 말이다. 역사, 참으로 무겁다.

역사의 중함을 이야기하고자 유물 이야기가 길어 지루했겠다. 다음 회에는 다시 하나라로 돌아가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청두 거리에 ‘촉’ 깃발이 아직 펄럭이는 이유는

- 수많은 인재 배출했던 소수민족들
- 한족 주류세력 되자 슬그머니 편입
- 문화 계승 못 한 채 자리만 옛 터 암시

	중국 쓰촨성 거리 곳곳마다 촉(蜀)의 깃발이 아직도 나부끼고 있다.

‘고촉(古蜀)’에 관한 문헌은 사마천의 ‘사기’의 ‘촉왕본기’와 동진(東晋)시대 상거(常璩)가 쓴 지리지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단편적으로 남은 기록뿐이다. 한나라 때 청두 출신의 학자 양웅(揚雄)이 쓴 ‘촉왕본기’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처럼 가물거리는 기억의 나라지만 그 땅에는 ‘천부(天府)’라는 이름 덕분인지 수많은 사람이 살아왔다. 지금도 중국 32개 성(省)·시(市) 중에서 네 번째로 많은 8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 티베트족, 이(彝)족, 묘(苗)족, 회(回)족, 강(羌)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고 이족과 티베트족, 강족의 자치주는 쓰촨성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을 정도다. 그렇지만 한족이 약 95%로 절대다수이고 자치주는 대부분 해발이 높은 산지이다.

‘사기’는 진(秦) 혜문왕(惠文王, 기원전 356년~기원전 311년) 때 고촉과 파를 멸한 것으로 기록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전 그 땅에 살았던 사람은 ‘촉족’으로라도 흔적을 남겼어야 할 텐데 그런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한족 유비가 그 땅에서 세운 나라 이름 ‘촉한(蜀漢)’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위 중원 땅에서 소란이 일거나 큰 재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촉 땅으로 피해가거나 그곳에서 내일을 도모했다. 분지(盆地)를 둘러싼 험준한 지세는 안전에 유리했고 천부는 살아가고 도모할 밑천이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천하가 안정되면 중원의 사람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불안한 배후가 되어서는 안 되니 사람으로, 머릿수로 한족의 땅을 만든 것이다. 옛 촉의 후손들은 주류세력이 된 한족에 슬그머니 편입되었을 테고.

어쨌거나 다양성의 혼융(混融) 덕분인지 천부의 축복인지, 쓰촨에서는 수많은 인재가 태어났다.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이백(李白), 당송팔대가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동파) 소철(蘇轍) 3부자를 비롯하여 주더(朱德) 덩샤오핑(鄧小平) 양상쿤(楊尙昆) 등 현대 중국 건국의 주역들도 다수이다.

쓰촨에는 거리 곳곳마다 ‘촉’이라는 깃발이 나부낀다. 까닭을 물어보면 대답은 ‘여기는 촉이니까’라고 답한다. 그저 지역 문화를 내세우는 것 같지도 않다. 뿌리는 잊었는데 전통에는 자긍심이라니, 아무래도 허전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