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크림반도’로 정했습니다. 크림반도의 주권 문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새로운 걸림돌로 떠올랐습니다. 러시아는 “합의할 준비가 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내줄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종전 계획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4개국 대표단 회동입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고 현재의 점령 상태를 기준으로 국경선을 확정하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종전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사실상 러시아 측에 유리하게 구성된 종전안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합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점령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어 2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트너들이 제안한 모든 것을 실행하겠지만, 우리 법률과 헌법에 위배되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죠.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비서실장을 지낸 콘스탄틴 옐리세예프는 “크림반도를 내주는 것은 정치적 자살을 넘어선 자충수”라고 평가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종전 방안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입니다.
원래 타타르인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는 역사 흐름에 따라 계속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15세기 말 오스만 제국이 점령했지만 1783년 러시아 영토로 병합됐습니다. 그러다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됐고 1991년 구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 소속 자치공화국이 됐죠. 그런데 2013년 우크라이나의 정세가 급변합니다. 친러시아 우크라이나 정권이 시민 봉기로 무너지고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친러시아 지역인 크림반도에서는 임시정부를 반대하는 집회가 계속됐죠.
이에 러시아군이 2014년 2월 27일부터 무장 병력을 투입해 크림반도의 주요 시설을 점령합니다. 같은 해 3월 1일 러시아 상원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력 사용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크림반도에 러시아군을 주둔시켰고요. 러시아는 사실상 점령 상태에서 주민투표를 시행해 러시아와의 합병을 의결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크림반도의 독립공화국 지위를 승인했죠. 크림반도 총리·시장과 함께 크림공화국 합병조약에 서명도 합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영토 변경은 주민투표가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한다’는 우크라이나 헌법 조항에 따라 무효라고 맞섭니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여전히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규정하고요.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크림반도를 양보할 수 없다는 여론이 거셉니다. 2010년 친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흑해 함대의 크림반도 주둔 연장에 합의했을 때 관련 정치인들이 반역죄로 기소됐을 만큼 크림반도는 국민 정서와 직결된 사안입니다. 게다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게 되면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라는 국제사회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위험한 선례가 생길 수 있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년 넘게 이어진 전면전에도 자국 동부 지역조차 완전히 수복하지 못했습니다. 크림반도 최대 도시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 함대 본부가 있어 러시아가 이를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작습니다. 러시아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에 귀속된 것을 ‘역사적 실수’로 보고 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땅따먹기’ 싸움 속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우크라이나를 향해 ‘크림반도 포기’를 종용합니다. 지난달 28일 ‘러시아가 2014년 불법 병합한 크림반도를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어권을 양도할 준비가 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넘길 의향이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죠.
2013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할 당시 영국의 한 외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크림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체가 관심 대상이며, 크림 합병으로 이번 위기가 끝나지 않을 것.”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위기는 크림반도 합병으로 끝나지 않았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