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비보이들에게 대학로가 있다면 부산엔 용골이 있다. 꺾고 틀고 돌고… 내로라 하는 춤꾼들의 현란한 댄스 배틀이 펼쳐지던 곳. 상업적 손길에 이끌려 옛 신화의 주역들은 하나 둘 떠났지만 용두산공원엔 다시 무대가 꾸며지고 부활의 점프가 시작됐다. 날아라 비보이 댄스, 아니 날아라 스트리트 댄스.

'한류가 시들고 있다'는 비관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오기 시작할 즈음, 한 무리의 '소년'들이 비장의 무기를 빼들었다.

이들의 무기는 자신들의 몸이었다. 빈 손과 빈 몸으로 춤을 추면서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세계 무대에 등장해 판을 휩쓸었다.

그 기세는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도장 격파 전국 투어'를 벌이며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하던 모습이 연상될 정도였다.

관객들은 환호했고 언론은 이목을 집중했으며, '차세대 한류의 핵심 콘텐츠'로 이 소년들은 떠올랐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소년들', 바로 비보이(B-Boy)들이다.


# '부활 용골 프로젝트' 올해 가동

문화단체 사상프린지는 올해 부산민예총 등과 함께 '부활 용골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2007년 무대공연 지원사업의 다원예술분야 지원작으로 선정돼 부산시의 지원도 받아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비보이들을 포함한 부산 스트리트 댄서(딸린 기사 참조)들의 성지였던 '용골'을 춤과 열정이 넘치는 스트리트 댄스의 심장부로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부활의 수단은 물론 춤이다. 부산의 비보이들이 대거 출연해 분위기를 잡고 아마추어 댄서들이 판을 벌려 '용골 부활'의 기치를 들겠다는 얼개는 벌써 나왔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부민 사상프린지 사무국장은 "정규 공연은 오는 4월말 2~3차례, 9월께 2~3차례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부산의 기성 비보이들과 스트리트 댄서들을 최대한 참가시켜 이목이 확 꽂히는 멋진 무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아니다. 기성 비보이들의 2차례 큰 공연들을 계기 삼아 저변에서 열심히 춤을 갈고 닦고 있는 후배 비보이들, 아마추어 동호인 차원의 스트리트 댄서들이 원하는 때 언제라도 연습과 공연을 할 수 있는 상설 공간을 용골에 다시 만들자는 것이 전략적인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4월과 9월에 열 비교적 큰 규모의 공연을 '용골 부활'의 자극제로 쓰되, 진짜 목적은 용골을 언제나 아마추어 비보이들, 스트리트 댄스 동호인들 그리고 남녀노소 관객들로 바글대는 상설 문화공간으로 만드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산 스트리트 댄서들의 성지라는 용골이 어디냐고? 서울의 대학로, 대구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함께 한국 비보이 열풍의 발상지로 꼽히는 그곳은 바로 용두산공원이다.



# 왜 용골인가

지난 1일 용두산공원에서 펼쳐진 킬라 몽키스와 오샤레팀의 공연 모습. 김동하 기자 kimdh@kookje.co.kr

지금은 수염이 거뭇거뭇한 청년들이 되어 군대에 가 있는 쌍둥이 댄스가수 량현량하, 몇년 전 힙합댄스 추는 동영상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를 달렸던 댄스신동 구슬기의 공통점은? 용두산공원에서 춤을 추며 전국적으로 떴다는 것이다.

최근 3~4년 동안 배틀 오브 더 이어(독일), 프리스타일 세션(미국), 유케이비보이챔피언십(영국), 레드불비씨원(순회 개최) 등 세계 4대 메이저 비보이 댄스대회를 비롯해 유수의 비보이 배틀에서 잇달아 우승과 상위 입상을 거머쥐면서 거센 비보이 열풍을 일으킨 한국 팀의 숫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갬블러, 익스트림 크루, 익스프레션, 라스트 포 원, 드리프터스, 리버스, 맥시멈 크루 등이 그 이름인데 이 가운데 국민은행 CF에도 등장한 갬블러는 단장이 부산 출신, 익스트림 크루는 부산서 시작한 팀이 통째로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경우다. 익스프레션도 부산 출신 팀으로 꼽힌다."(비보이팀 킬라 몽키즈 양문창 대표·21) 이들의 공통점은? 용두산공원에서 시작했다는 거다.

"1998년께 자연스럽게 용두산공원에 비보이들을 비롯한 부산 스트리트 댄서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남포동 주변에 각 팀의 연습실이 많았고 공원이라는 특성상 편하게 춤출 수 있었던 데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관객들이 호응도 많이 보내줬으니까요." '부활 용골 프로젝트' 준비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때 용두산공원의 비보이 공연을 주도했던 비보이팀 킵 더 패이스 허우경(30) 단장은 용골의 강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절정은 2000년을 전후한 1~2년이었다. "언제라도 용두산공원에 올라가면 춤추는 동료들이 와 있었어요. 수십개 팀이 올라와서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고 서로 교류도 하면서 춤을 췄죠. 운영자가 나타나 음향장비를 마련해줬고 홈페이지도 운영했습니다. 그러면서 용골 신화가 탄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허 단장) 그는 "당시 용골에서 춤을 추면 용두산공원에 놀러온 시민들이 빵과 음료수를 사주며 격려해 주기도 했는데 그때 만난 아주머니를 한번 만나고 싶을 정도로 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용두산공원이 한창 활성화됐을 때 부산은 서울과 함께 규모 면에서 한국 비보이계를 양분했다. "대구 서울 등지 춤꾼들과 교류도 했고, 김수용 씨의 만화 '힙합'에 용골이 한국 스트리트 댄스의 메카 중 한곳으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킵 더 패이스 멤버 김성원 씨·26) 부산 중구청도 중구청장배힙합댄스경연대회를 용두산공원에서 해마다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뒤 환경이 급변했다. 비보이가 주목받으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팀이 하나 둘 생겼고 상업적인 손길이 미쳐 타격을 받기도 했다. 2004년 킵 더 페이스 등 남아있던 6개팀이 더 큰 무대를 찾아 서면1번가로 장소를 옮기면서 용골 신화는 황급히 막을 내렸다.



# 부활은 가능할까

일단 부산의 스트리트댄서들은 용골 부활 프로젝트를 크게 반기고 있다. 후배 비보이들과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마음 놓고 설 무대가 없어져 몇녀 전부터 한쪽에서 "용골을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어온 터였다. "더 많은 시민과 만나 우리 춤을 알리고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비보이팀 오사례의 김민수 대표(23)는 말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김 대표는 "요즘 프로 비보이댄스팀들은 일단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두팀 씩 빠지다가 흐지부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섭외와 기획으로 참여하고 있는 서덕구힙합댄스스쿨 서덕구(27) 대표는 "비보이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지만 부산에서는 오히려 팀이 줄어들고 있다. 후배들을 위해 좋은 공간을 마련해 줘 저변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여기에 참여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두산공원을 비보이들의 성지로 되살리겠다는 기성 팀들의 의지, 후진과 동호인들을 위해 상설 공간이 꼭 필요하다는 절박감, 부산의 명물 용두산공원을 특색 있는 관광지로 꾸미겠다는 지자체의 필요성 등이 얽혀 '부활 용골'의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 보인다.

하송이기자 bgjoe@kookje.co.kr



# 비보이 ? NO ! 스트리트 댄서라 불러주세요

젊은이들이 길거리나 공연 현장에서 삼삼오오 힙합댄스나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고 무조건 "저기 비보이들 춤추네!"하고 말하면 안된다. 비보이는 스트리트 댄스의 한 장르다.

1980년대 미국의 길거리에서 힙합 문화의 한 표현 양식으로 시작된 스트리트 댄스에는 여러 부문이 있다. 고난도의 몸 동작을 선보이는 비보이(비보이가 춤을 추는 것은 비보잉이라 한다), 로봇춤처럼 몸의 관절을 꺾는 팝핀, 상체 중심의 락킹, 그리고 하우스와 프리스타일 등이다.

팝핀을 주로하는 김성원 씨(26)는 "공연에 갔을 때 주최측이나 방송사에서 팝핀 팀인 우리를 비보이팀이라고 흔히 소개하는데 그 때 우리는 좌절한다"며 "그건 한국춤을 추는 사람을 발레리나라고 소개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전문 비보이팀으로 맥스, 킬라 몽키스, 스텝크루, 오샤레 등이 있다. 킵 더 패이스는 팝핀과 락킹을 주로 하며 XTC와 뉴필은 팝핀팀으로 꼽힌다. 서덕구 힙합댄스스쿨과 그 산하 팀들과 나타라자는 힙합 팀으로 분류된다.

조봉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