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가자 : 김미라 안주현 박상희 박주영 하지원 주원영

● 장 소 : 부산 금정구 장전동 민족미학연구소

● 일 시 : 2007년 3월 19일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나온 신인 춤꾼들이 거리에 섰다. 왼쪽부터 박주영 한지원 김미라 박상희 안주현 주원영 씨. 촬영 장소는 지하철 부산대학앞 역.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춤이 붐이다. 온통 춤이다. 한국 비보이(B-boy: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젊은이들)들은 춤 하나로 세계를 휩쓸었다. 공연장에서는 신나는 춤이 있는 뮤지컬이 유독 강세다. 인터넷에 떠도는 UCC(네티즌이 직접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창작물) 동영상 속에 춤은 빠질 수 없는 품목이며, 홈쇼핑 채널들은 에어컨을 팔면서도 미녀들의 춤을 동원한다.

그러나 기초예술의 주요 장르인 춤예술로 초점을 옮기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봄이 아니다. 지역의 대학무용 교육은 위기에 빠졌다. 대학 무용학과 지원자가 줄면서 존립의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졸업생들이 갈 곳은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고 요즘 지역의 대학 무용계가 예술적으로 충격을 줄만한 창의성을 우리 사회에 원활하게 공급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도 춤에 대한 열정으로 속을 꽉 채운 신인 춤꾼들은 해마다 배출되고 있다. 결국 이들이 지역 춤계의 내일을 짊어질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 신예 춤꾼들은 춤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춤 예술인의 길에 갓 접어든 신인 춤꾼 6명을 만나 그들의 춤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오는 23~25일 민주공원에서 열리는 '제13회 신인 춤제전-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을 통해 안무자이자 춤꾼으로 데뷔한다.


# 춤꾼으로 오롯이 홀로서기 험난

-당신들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정글같은 사회에 나왔다. 이제 예술가로 살아야 한다. 기분이 어떤가.

"솔직히 막막한 감이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뭔가 길이 있어야 하는데 중·고등학교에선 예체능을 점점 등한시하고 시립무용단같은 프로 무용단으로 가는 길은 뽑는 인원이 너무 적어 사실상 막혀 있고. 댄스스포츠 교육같은 쪽으로 가려면 우리가 대학에서 받은 교육과 별도로 돈을 들여야 한다. 딱히 뚜렷한 길이 안보인다. 그래서 나는 일본어를 부전공했다. 하지만 춤을 포기할 수는 없다. 사람에겐 천직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금까지 삶이 쉽고 단순한 것이 아니었는데 춤을 추는 순간만은 가장 나다운 느낌, 우주 속에 나 혼자만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안주현·경성대 출신·이하 대학 이름만 표기)=

"졸업하면서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춤을 계속 출 수 있는 길, 나중에 춤을 가르치며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한 결과다. 춤을 만들고 추면서 느끼는 그 존재감이란 놀라운 것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겪는 그 모든 고통을 다 보상한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춤추는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현대무용을 전공했는데, 한국에 프로 현대무용단체는 사실상 대구시립무용단 하나뿐이고 독립 춤꾼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중들과 더 잘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어 춤 예술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가 아닐까. 예술성과 대중성을 잘 갖춘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같은 단체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하지원·부산대)

자리를 함께 한 다른 신인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적인 막막함과 춤이 자신들에게 주는,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희열 그리고 춤예술의 저변 확대 열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이 '방황'을 창조를 위한 고통스런 과정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그런데 창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원영(창원대) 씨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주 씨는 "우리 대학은 교수님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많은 교육과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할 뿐 아니라 서울과 지역의 공연에 참가할 기회도 많이 주선했다. 지역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다. 팬클럽을 거느린 학부생도 있고, 공연을 본 중고생이나 학부모가 직접 무용수에게 연락해 레슨을 부탁해 오기도 한다. 이런 저런 객원 출연과 공연 기회를 잘 잡으면 활동비는 나온다.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국내 도시들 중 1인당 GDP 수위를 다투는 창원의 힘일까. 대화에 참가한 신인들 사이에서 "과연 그럴 수도 있냐"며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 나만의 춤을 향하여 아자! 파이팅

-지역에서 춤예술 또는 대학 무용교육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런 위기를 실감한 적이 있나.

이 주제는 다양한 반응을 불렀다. "우리는 2005년 레저스포츠학과와 무용학과 통합 문제가 불거져 데모도 했다. 그 과정에서 기초예술과 예술적 창의성이 너무 홀대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부산대 출신 박주영 하지원 씨가 먼저 말했다. 그러자 신인 춤꾼들의 소감은 꼬리를 물었다. 어떤 것은 정식 토론에 붙여도 좋을 만큼, 논쟁의 불씨를 품고 있는 내용이었다.

"교수님들의 공연을 뛰다보면 자기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기가 힘들어요. 개인의 춤 성취도보다 공연 실적이 더 중요하거든요. 공연에 필요한 동작과 테크닉을 더 많이 익히죠. 1년이 그렇게 흘러버리기 쉬우니까 자기 춤에 대한 고민은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든 어쩌든 개인이 해야 하는 경우가 되곤 하죠." "자기 춤에 대해 고민하며 자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게 배려해주는 분들도 있고 좋은 점도 많아요. 그렇지만 구조적으로 한 스승의 풍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한계는 느꼈죠. 이걸 강조하는 분을 만나면 저걸 까먹고 저걸 강조하는 분을 만나면 이걸 까먹고. 그렇다고 향후 진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지원도 활성화돼 있지 못하고…."

이들의 고민은 이어졌다. "우리 선배들이니까 이해는 하지만 연배를 꽉 채우고도 시립같은 프로 단체에서 계속 뛰는 건 우리 세대 입장에선 힘겨울 때가 있어요. 우리는 갈 데가 더 없어지는 거니까." "자기의 춤 스타일 문제나 장래 진로를 고민하다 춤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죠."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모습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교수님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그 밑에 주렁주렁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구조라 할 수 있잖아요. 이런 구조에서 예술적 다양성이 더 크게 발현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지역 무용계는 맨홀에 빠진 것 같아요."

대학마다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전제하면 설익은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느끼는 현실과 고민은 치열했다. 무용계에서 한번쯤 토론할 필요가 있는 주제도 감지됐다.


# 지역 무용계는 맨홀에 빠진 느낌

-그럼에도 춤의 길에 들어섰다. '나의 전망과 다짐'을 듣고 싶다.

이들은 "대학에서 춤을 전공하면서 스승과 예술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감사드린다"면서도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음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춤같은 것.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매진하고 싶어요."(박상희·경성대)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왔어요. 선생님들께서 작은 체구이지만 (무대에서) 크게 보인다는 말을 해주셨을 때 뿌듯했어요. 직장을 따로 구할 생각이지만 동인단체에 들어가서 더 열심히 계속 춤출 겁니다."(김미라·경성대) "'주영이답다'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관객들과 같이 웃고 느낄 수 있는, 소통이 잘 돼는 작품을 만들며 춤꾼으로 살고 싶습니다."(박주영·부산대)

어스름이 지고 밤이 짙어졌지만 이야기는 더 무르익어 갔다. 이제 막 시작한 이 신인 춤꾼들에게 주위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