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프랑스문화원(알리앙스 프랑세즈 부산)에서 또 다시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2007 랑데부 드 부산' 개최를 알리는 메일이었다. 이맘때 쯤이면 언제나 날아오는 녀석이다. '랑데부 드 부산'은 부산프랑스문화원이 해마다 한번씩 약 한달 동안 부산에서 여는 종합 프랑스문화 축제다. 올해로 다섯번째다. 프로그램을 쭉 훑어보니, 울랄라! 올해도 내용이 좋다.

부산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현재의 프랑스 문화를 보여주는 행사들이란 점이 우선 마음을 끈다. 그리고 지난 해 행사와는 다르게 프로그램을 기획한 노력이 역력히 엿보인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프랑스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이기에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돈 들이고 힘 들이고 시간 들여가며, 이렇게 큼직한 문화행사를 해마다 여는가. OECD 나라들 중에 문화교류 하는데 이다지도 애쓰는 나라가 또 있나? 워낙 문화를 좋아하는 나라라서? 그 비밀이 뭐야?'

발길은 어느새 '2007 랑데부 드 부산' 준비로 한창 바쁜 알리앙스 프랑세즈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산 동구 초량동 부산YMCA 건물 옆이다.

부산프랑스문화원에 들어서자 엠마누엘 보띠오(34) 원장과 통역을 맡아준 직원 배정선 씨가 맞아준다. 지구상에는 이런 해외 주재 프랑스문화원이 현재 134개 나라에 1062곳 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는 서울 2곳과 부산 인천 광주 대구 대전 전주 등 8곳이 있다. 해외 주재 프랑스문화원은 프랑스 외무부와 프랑스문화진흥원에서 공적인 지원을 받지만 정부 직속 기관이 아니라 독립단체다. 다만 원장은 프랑스 정부의 직원 자격으로 파견된다.

다시 말해, 담백하고도 멋진 옷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신사(보띠오 원장)가 공무원이라는 얘기다. 왠지 공무원에 대한 고정관념이 흔들린다. 그가 들려준 '랑데부 드 부산'과 프랑스의 해외 문화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는 공무원에 대한 관념을 또 한번 흔든다.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문화원의 문화적 관점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의 옹호와 상호 소통에 있습니다." 보띠오 원장은 프랑스가 해외 문화교류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배경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은 워낙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라는 우스개를 소개하며 "프랑스 문화 자체가 '순수하게 프랑스적이다' 할 만한 것이 크게 많지 않다. 수많은 인종과 다국적 문화가 혼합되면서 형성됐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획일성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같은 것을 또 먹고 같은 옷을 또 입고 같은 것을 또 보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이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교류에 대한 욕구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래! 일찌기 드골 대통령이 "1년의 날짜 수만큼이나 다양한 치즈를 찾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 어찌 힘들지 않겠냐?"고 푸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이것이 프랑스가 유독 강한 문화산업을 위한 전략적 측면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히 문화의 수요자가 우리(프랑스)를 찾아오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나서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프랑스문화원의 기능은 단순히 프랑스문화를 알리는 데만 있지 않다. 해외의 다양한 문화를 프랑스와 세계에 소개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라고 덧붙였다. 해당 국가의 문화를 살펴 프랑스 국내로 소개해 한국의 날, 중국의 날과 같은 교류행사를 펼치는 일에도 힘을 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양성과 교류'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부산에서 5년째 열리고 있는 '랑데부 드 부산'은 특별한 존재다. 이 행사는 지난 2003년 주한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한 '랑데부 드 서울'과 함께 시작했다. 하지만 '랑데부 드 서울'은 예산난 등의 문제로 2회 행사를 끝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부산프랑스문화원은 '랑데부 드 부산'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프랑스문화원 중에서도 지방도시에서 이처럼 종합적인 대형 프랑스 문화축제를 꾸준히 열고 있는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랑데부 드 부산'을 키워온 알리앙스 프랑세즈 부산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올해 행사를 앞두고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프랑스의 유명한 문화 관련 인터넷 웹사이트인 프렝탕 프랑세 다지(www.printemps-francais-asie.org)에서 '랑데부 드 부산'을 단독으로 소개키로 한 것이다. 보띠오 원장은 "그렇다고 '랑데부 드 부산'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사가 된 건 아니지만 인지도를 높여가며 점점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웃으며 말했다.

'랑데부 드 부산'은 일부 행사에 대해 프랑스 외무부와 프랑스문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지만 대부분 문화이벤트의 기획과 진행은 부산프랑스문화원이 책임진다.

그 방식은 "복잡한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지역기업이나 문화단체에서 협찬을 하거나 공동 주최도 하고 부산에 진출한 프랑스계 기업의 후원을 얻기도 하며 전시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들이 한달이라는 기간에 부산에 집중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율해야 한다. 물론 자체 예산도 투입한다. 보띠오원장이 국내 프랑스문화원 연합체의 문화 부문 책임자로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보띠오 원장은 "부산에서 '랑데부 드 부산'을 지속하는 것은 서울 중심의 한국 문화현실에 대해 투쟁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뜻도 있다"며 "같은 행사를 반복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행사를 하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지역기업이나 문화시설 등 파트너와 뜻을 맞추기가 어려울 때도 많지만 발전하는 '랑데부 드 부산'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부임한 그는 오는 2008년 귀국한다. 해외 문화원장의 임기는 3년인데 3회 연임은 금지돼 있다. 6년 정도 해외근무를 했으면 귀국해서 프랑스 문화를 '재충전'해야만 다시 기회를 준다. 그래야만 프랑스 문화의 전도사 구실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엠마누엘 보띠오 부산프랑스문화원장이 '2007 랑데부 드 부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