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부산시립무용단이 부산문화회관 지하 연습실에서 '이쁜이 시집 가는 날'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서순룡기자 seosy@kookje.co.kr

춤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영화 연극 드라마는 오히려 단순한 작업일 수 있다. 구체적인 대본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연극 드라마의 표현 수단은 연기다. 연기는 생활의 모방이다. 우리 주변에 흔전만전 널린 생활을 모방하거나 재해석해 말로 표현하면 연기는 나온다. 연기를 하는 사람도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춤 작품의 탄생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말을 하지 않고 오로지 몸과 음악으로 표현하는 춤 작품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춤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동작들은 안무자가 하나하나 창조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어딘가에 있는 것을 가져와 재구성하는 것일까. 화려하고 우아하게 춤추는 춤꾼들에겐 또 어떤 희열과 고뇌가 있을까.

오는 31일~6월 1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부산시립무용단 제56회 정기공연 '이쁜이 시집가는 날'(안무 홍기태 수석안무자)의 제작 현장을 여러 날에 걸쳐 밀착취재해 춤의 탄생 과정을 지켜봤다.


# 공연장 옆 한의원-ㅎ 한의원

부산시립무용단 홍기태 수석안무자가 단원들의 춤동작을 예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부산시립무용단 단원들이 갑자기 밀려오기 시작하면 아! 공연이 다가왔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느낌은 틀림없죠. 어릴 때부터 춤만 춰온 분들이라 몸과 얼굴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근육을 혹사하는 분들입니다. 막일 하는 분들 수준이에요. 몸 상태를 보고 많이 놀라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죠. 침과 마사지 등을 주로 처방합니다."

부산 남구 대연3동 부산문화회관 근처 ㅎ한의원 한옥현 원장의 증언이다. 이 한의원은 부산시립무용단이 둥지를 틀고 있는 부산문화회관과 가까워 무용 단원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곳이다.

이 말을 전하자 단원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한의원은 근육 쪽에 문제가 있을 때나 침을 맞기 위해 가는 곳이다. 연습 도중 삐고 다치는 일도 다반사인데 뼈에 문제가 생기거나 진통제 주사를 맞으려면 요앞 ㄱ정형외과에, 물리치료나 교정을 할 때는 저쪽 ㅈ재활원에 간다. 모두가 그렇다고 보면 된다."

"붕어즙 녹용 홍삼 한약 개소주 글루코사민….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단원들이 장복하는 건강보조식품 목록만 말해도 어휴 굉장할 걸요. 워낙 체력 소모가 심하니까."(미언 역의 김기원 씨)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날 고기가 당겨요."(갑분이 역의 정진희 씨). 저 가냘픈 몸매에 고기가 당긴다니. 연습실에서 보니 통증 완화를 위해 발을 칭칭 테이핑한 단원이 한둘이 아니다.


# 구상 그리고 연습-고난의 행군

홍기태 수석안무자는 지난해 6월 제54회 정기공연을 끝내자 마자 '이쁜이 시집가는 날'의 구상에 들어갔다. "큰 공연 스케줄은 1년전에 잡아야 합니다." 7월께 대본을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이번 대본은 부산의 마임이스트이자 연극인인 하현관 씨가 맡았다.

"초벌 대본이 나오기까지 2~3개월은 줘야하니까요. 무용대본은 연극이나 영화처럼 구체적으로 역할을 지정하지도 않고 대사도 없어요. 흐름을 잡는 거죠." 홍 안무자는 이 대본을 사랑 시기 질투 불화 등을 각각 담는 구체적인 장면들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 뒤 이 대본을 작곡가에게 전달한다. 홍 안무자와 부산시립무용단은 그 사이 초대형 정기공연 작품 '결'을 지난해 11월 또 무대에 올려야 했다.

작곡가 서상환 씨는 지난 2월말 1차로 음악을 완성했다. 그렇다고 작곡가가 손을 터는 것은 아니다. 안무자의 전화를 기다린다. "네! 안무자 선생님이 전화할 줄 알았읍니다. 어떻게 고칠까요." 이것이 홍 안무자의 전화를 받은 작곡가 서 씨의 첫 반응. 음악은 수시로 바뀐다. 정기공연을 위해 작곡가가 시립무용단에 보내주는 시디만 15~20장. 급할 때는 이메일을 이용한다. 음악은 춤 작품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부산시립무용단은 이 작품을 위해 2월부터 연습복을 한복으로 교체했다. "우리 전통적 요소가 많다 보니 연습할 때부터 한복의 느낌을 몸에 익혀야 했기 때문이죠."(홍 수석안무자) 이때부터 연습이다. 안무자는 음악을 바탕으로 동작과 동선을 하나하나 새로 짜고 공연 석달 전부터 몸 풀기에 들어간다.

어느 새 공연 한달 전. 주역급들은 오전 8시께 출근해 밤 9~10시에 퇴근하는 생활에 들어간다. "주역들은 하루 12시간을 연습하는 거죠."(단원 권봉정 씨) 이들의 정식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시간 외 근무수당은 없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작품 전체를 돌리는 날은 점점 늘어나고 부분 연습도 많으니까 평균 잡아 한 작품을 100번 이상 춰보고 무대에 올라간다고 볼 수 있겠네요."(홍 안무자)


# 쇼케이스

쉬는 시간에 안무자와 단원들이 작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더 많은 관객에게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적극적인 홍보는 필수. 요즘 예술단체들은 새롭고도 효과적인 홍보 방법을 발명하기 위해 눈이 충혈됐다. 부산시립무용단은 이번 공연부터 쇼케이스(Showcase)를 도입했다. 시민들을 찾아가서 약 10분짜리 맛배기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지난 4월 말과 5월 19일, 26일 모두 세차례 쇼케이스를 단행했다. 반응은 좋았다. 단원들은 한껏 고무됐지만 어째 예매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스태프들은 속이 탄다.

기획 박소윤 씨와 홍보 담당 김태훈 씨는 각급 학교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작품 홍보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언론을 초청해 연습현장을 공개하는 등 정신이 없어진다.

공연 1주일을 앞두고 의상과 소품(제작사 미스터 리)이 착착 도착하고 무대 설치(무대디자이너 백철호)도 급진전된다. 부산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 예산은 인근 울산시립무용단에 비해 훨씬 적다. 주어진 예산으로 욕심 만큼 공연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안무자도 덩달아 바쁘고 초조하다.


# 막이 오르면

지난 29일 부산시립무용단의 지하 연습실. 넓이는 60평에 불과하다. 신라대 연습실보다 작고 전국 시립무용단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무용수들이 서로 부딪치는 등 사고의 위험까지 상존한다. 그런데 연습실 한쪽에서 음악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띈다. 이현정 이화성 단원이다. 이들은 무대에 올랐다 하면 날아다니는 춤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부상으로 인해 이번 공연의 무대에 오를 수 없다. 표정이 쓸쓸해 보인다. 두 사람 말고 남자 단원 한명도 큰 부상으로 쉬어야 한다.

"쓸쓸해 보인다고요? 지금 우리한테 불 지르러 왔어요?"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자 이화성 단원이 살짝 눈을 흘긴다. 그들은 간절히 무대에 오르고 싶은 것이다. "마음은 무대에 가 있고 (연습장면을 보면서) 눈으로 함께 춤을 추고 있죠. 길고도 힘든 연습 끝에 공연은 한번 아니면 두번인데 커튼콜의 그 순간에 환희가 있어요. 박수를 받으며 울기도 하죠. 그럼 모든 고통이 씻겨 나가는 것 같아요." 아마 이것이 고되고 힘든 여건을 딛고 이들이 예술가로 살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힘인지도 모른다. 문화행정은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들의 근무여건은 10년이 넘게 변하는 게 없다.

춤꾼들은 보통 공연 연습 기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앓는 법이 없다. "한달 가까이 12시간씩 연습하고 있는데도, 약간 멍하기만 할 뿐 피로를 모르겠어요."(김기원)

그런데 공연이 끝나면 그 긴장과 피로가 일시에 터지면서 이들은 2~3일씩 꼼짝도 못하고 드러눕는다. 그동안 취재를 통해 만난 춤꾼 대부분이 그랬다. 그걸 알면서도 이들은 어서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