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와 독일 베를린에서 조각 작업을 해왔던 한 남자가 1937년 사망하자 베를린의 모 잡지는 그의 부음을 알리며 이렇게 썼다. "가짜 미술품 제작자는 떠나갔지만, 예술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알체오 도세나. 서양 미술사가 희대의 위작 전문가로 기록하고 있는 그는 1878년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났다. 도세나는 석공 조수로 고대 건축물을 복원하는 일을 하다가 죄악의 길로 빠져든다. 고대 석상에 통달하자 위작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 그 솜씨가 얼마나 빼어났던지 뉴욕 프렉 컬렉션 등 유명 미술관들은 영락없이 당했다. 도세나는 자신이 만든 위작 중세 조각상을 진품으로 알고 잇달아 구입하는 미술관 큐레이터들을 속으로 마음껏 비웃었다. '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의 행진'(브라니언 이니스 지음·휴먼앤북스)에 소개되고 있는 내용 중 일부다.

도세나의 사기 행각은 눈 밝은 미술계 인사로 인해 결국 들통이 났을까? 아니다. 그 범죄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다름 아닌 도세나 자신이었다. 그는 위작을 판 돈이 형편없이 적어 죽은 아내를 성대하게 장례 치르지 못하자 분통이 터져 판사를 찾아가 자신이 벌인 범죄를 그만 이실직고했다. 그의 위작을 구입한 미술관이나 화상들은 기절초풍했지만 도세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판사가 죄를 고백한 대가로 무죄를 선고했으니까 말이다. 도세나의 말년은 결코 유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선병원에서 그는 쓸쓸하게 죽었다고 서양미술사는 적고 있다.

박수근(1914~1965) 작품은 그 유명세를 반영하듯 걸핏하면 위작 시비에 휘말려 왔다. 지난 연말 서울옥션 경매에서 45억2000만 원에 경매된 박수근 유화 '빨래터'(72×37㎝)가 묘사가 서툴고 질감이 떨어진다는 이유 등을 들면서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고 신생 미술잡지 '아트레이더'가 주장해 한국 미술계가 소란스러워졌다. 문제가 된 박수근 유화는 새해 벽두 미술품 감정단으로부터 '진품' 판정을 받아 위작 시비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 이에 대해 미술계는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서울옥션과 아트레이더의 차후 대응을 주시하고 있다.

미술사학자 조르조 바사리가 쓴 '예술가 열전'은 가짜 미술품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도 위조 미술품을 제작했다. 그는 친구의 꾐에 빠져 고대 미술품 '잠자는 큐피드'를 모사해 팔아먹은 전과가 있다. 미켈란젤로는 위작을 땅 속에 파묻어 발굴하는 과정을 통해 진품으로 둔갑시켰다. 그 조각상을 산 사람은 추기경이었는데 나중에 위조 사실을 알고 환불을 요구했다가 오히려 망신을 당했다. 주위 사람들이 걸작을 몰라본다며 비웃었고 덩달아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더욱 올라갔다고 한다. 위조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미술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위작 미술품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어 안전판 마련이 절실하다. 선진국의 미술품 위작 수준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반해 국내 감정 시스템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소장한 고가의 미술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해 달라는 요구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창구가 없는 게 현실. 이런 틈을 비집고 위작 미술품이 독버섯처럼 자라는 것이다.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한국미술 시장이 위작 시비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전 미술계가 이마를 맞대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