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송인 허수경 씨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의 정자를 기증 받아 시험관 아이, 딸을 낳았다. 허 씨는 엄마가 되기 전에 남편 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고 '커밍아웃'했다. 싱글맘 비혼모(非婚母)가 되겠다는 예고였다. 일부일처제, 남녀 한 쌍이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정상적인' 관계에 익숙한 이들은 허 씨를 낯설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이란 개념은 상대적이며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일부일처제는 필수가 아니라 이제 선택이라는 걸 싱글맘 싱글대디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26일 밤 11시5분 방송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나도 엄마가 되고 싶다, 미스 엄마들의 도전'도 우리나라에서 움트고 있는 새로운 남녀·가족 관계의 진화도를 보여준다. 동성 부부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같은 집에서 늘 붙어살지 않으면서도 부부사이를 유지하는 남녀도 있다. 이런 남자와 여자의 짝을 통칭 커플이라고 하자. 이런 다양한 커플의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그 관계를 지속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책 중 하나가 '커플의 재발견-당신에게 맞는 커플의 형태를 찾아라'(필리프 브르노 지음·이수련 옮김·에코리브르)이다.

지은이는 독자에게 묻는다. "강렬한 사랑이 맺어준 결혼이 파경으로 막을 내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혼생활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 질문은 결혼한 커플 30%가 갈라서고, 30%는 불만족 속에서 현상 유지에 급급하고, 나머지 40%만이 그토록 갈망하던 행복을 누리면서 살길 바라야 하는 음울한 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사회는 현대 생활에 보다 적합한 커플 양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양식은 도대체 어디에? 바로 고통 받고 있는 커플 내부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현행 결혼제도는 실패했다'고 단정을 지으면서도 결혼 그 자체를 뿌리째 부정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을 받아들이되 그 속 커플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해 보는 것이다. 크게 발상을 전환하는 셈인데 그 전에 반드시 알아둬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커플 생활은 사랑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많은 커플들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모른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예는 이렇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커플들 거의가 화해의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들의 최고의 약점이라는 걸 모른다고 한다. 이는 커플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갈등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는 가위이며, 반대로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커플이 공유한 히든카드이기도 하다. 위기가 찾아오지 않은 커플은 없다. 문제는 위기에 대한 대처방식이다. 그걸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비록 아주 사소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말 한마디로 갈등이 치유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현대 커플의 형태는 분화되고 그런데도 불화를 치유할 수 있는 근본대책은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 한 가지 역설이 숨어 있다. 우리 현대인은 여전히 사랑하는 상대방과 함께 일부일처의 커플로 살아가기를 욕망한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소박한 결론을 이끌어 낸다. 보다 안정적이고 행복한 커플 관계를 얻으려고 노력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열매가 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커플 스스로 자신들을 진단해 보고 자신들에게 맞는 형태를 만들어내면 행복해진다. 서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 짜릿하지 않는가.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