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이 국가 차원의 문제로 대두되다 보니 '임산부의 날'까지 생겼다. 매년 10월 10일이다. 전 보건복지부가 제정, 2006년 1회 대회를 치렀다. 여성의 임신기간을 상징하는 숫자 '10'이 두 개 겹친 날을 택해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지만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매년 10월 10일이 '세계 사형반대의 날'이라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 기념일은 세계 사형 반대 연합(World Coaltion Against the Death Penalty· WCADP)이 정했으며 올해로 6회째다. 한국WCADP 회원들은 해마다 '세계 사형반대의 날' 관련 행사를 가졌는데 올해는 더욱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최근 안양 초등생 납치 살인·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 같은 천인공로할 강력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제 존폐 논란이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사형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900여 명이 사형 당했다. 마지막 사형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 30일(23명) 실시됐다. 이후 한국에서 10년간 단 한 차례도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앰네스티는 지난해 말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형수가 59명 있다. 지난해까지 65명이었지만 성탄절 특별사면으로 6명이 감형됐다.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는 대세이다. 한국은 한 발짝 뒤로 발을 뺀 형세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사형제 폐지를 최종 목표로 하는 UN의 사형 집행 유예를 촉구하는 결의안에 대해 기권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 역시 사형제가 유지되길 원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그러하다. 유인태 국회의원 등 일부 정치인이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빛을 보지 못했고, 종교·인권단체 중심으로 사형제 폐지 논의가 '조용하게' 진행돼 왔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흉포한 범죄가 연발하자 사형제 존폐 논란에 불이 붙었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이 제도가 인간의 원초적인 보복심리에 기초한 반문명적이고 야만적인 형벌이라고 주장한다. 살인을 금지하고 있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모순에 빠진다. 수형자의 교화·개선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 현대 형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형제는 오심(誤審)을 바로잡을 가능성을 영원히 박탈해 버린다. 유력 인종이나 힘 있는 계층은 그렇지 않는 인종·계층에 비해 사형제의 틀에서 한층 자유롭기도 하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가 강력 범죄를 막는 데 효과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일 그렇다면 사형제가 시행되면 흉악한 범죄가 줄어야 한다. 여기서 법리학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사형제가 시행되는데도 흉악범죄는 줄지 않았으며, 되레 완전범죄를 부추기는 부작용까지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빅토르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한택수 옮김·궁리) '교도관 나오키'(마모라 고우다 지음·학산문화사) '증오에서 삶으로'(필립 모리스 지음·궁리) '푸른 별 아래서 나를 잠들게 하라'(김데레사 지음·서음출판사)와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등은 사형제 존폐 논란은 단순한 법리 해석을 넘어 인간이 고민해야 할 근본 문제임을 말해준다. 사형제에는 인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해석이 농축돼 있다. 그건 또 우리의 얼굴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