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전당은 해체주의 건축이다. 또 LED 지붕은 영화가 '빛의 예술'임을 상징한다. 이곳이 영화를 넘어 다양한 '빛의 예술'들을 살리는 '빛의 전당'이 되면 좋겠다. 국제신문DB

- 존재를 유일한 기능으로 한정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던 다른 면들 죽어
- 해체주의 건축, 과거의 개념 넘어 편협한 자의식 죽이고 상대 살려야

건축을 주제로 하는 국내 영화 두 편이 나왔다. '말하는 건축가'와 '건축학개론'이다. '말하는 건축가'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지난해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의 마지막 2년을 담았다. 정기용은 전북 무주에 '목욕탕 면사무소'와 '등나무 운동장'을 지었다. 관공서가 공식적 공간이고 정장 차림이 어울리는 곳이라면, 목욕탕은 그걸 벗는 곳이다. 그럼 목욕탕이 들어 있는 면사무소는 공적 공간인가 사적 공간인가. 또 운동장의 본뜻은 운동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보통 사람들의 공원이 되고 쉼터가 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무주군은 운동장 관람석 둘레에 등나무 240그루를 심었고, 정기용은 등나무 줄기를 받치는 구조물을 세웠다. 구조물 기둥을 이곳 등나무의 평균 굵기로 세워 편안한 그늘 공간을 만들었다. 게다가 봄날 흐드러진 등꽃은 둘도 없이 아름답다. 그래서 이제 운동장은 공원이 되고 쉼터가 됐다.

■해체주의는 이름을 해체한다

겉보기에 전혀 공통점이 없고 대립하는 요소들이 뜻밖에 연결되며, 서로를 보충하고 있다. 또한 그런 이유로 한 건축물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렵다. 바로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작동하는 대목이다. 해체주의는 '이름'을 해체한다. 한 이름에 부여된 유일한 기능과 목적을 해체하는 것이다.

누군가 "데리다를 아세요"라고 물었다면, 아마 그의 사상을 아느냐란 물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친구이고, 이웃이며, 아들이고, 아버지였다. 따라서 데리다란 이름을 오직 철학자로 호명하면, 나머지 모습들을 불러내지 못한다. 존재를 한 이름으로, 유일한 기능으로 한정하는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던 다른 면들은 모두 죽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거꾸로 볼 수도 있다. 내가 그를 '꽃'으로 부르는 순간 그는 죽었다고. 충만한 생명의 몸짓이 '꽃'으로 줄고, 굳어버렸다고. 이 점에서 데리다는 서구 형이상학 2500년 역사를 비판한다.

형이상학은 한 존재를 넘어 세계 전체에 하나의 이름을 붙였다. 플라톤은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 데카르트나 칸트는 '생각하는 인간 주체'를 내세웠다. 세계의 토대로 보이는 것에 저마다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이름에는 언제나 대립하는 항목이 있다. 현상 물질 우연 감성 욕망 등이다. 형이상학은 이 대립물 가운데 한쪽만을 세계의 토대로 내세운 것이다.

문제는 토대란 것이 사실 그 토대가 배제하는 대립물이 없으면 설명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마치 남성이 '여성 아닌 것'으로 정의되듯이. 또 소설 '죄와 벌'에서 경험하는 선함의 가치가 주인공의 죄에 대한 깊은 공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듯이. 즉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지듯이' 토대의 홀로서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다른 것'을 배제하는 토대 세우기는 '무지'일 뿐 아니라 폭력이다. 이 토대를 바탕으로 한 이름도 마찬가지다. 한 존재의 의미는 다른 것들과 끝없이 연결되며 열려있기에 섣불리 내가 정한 이름은 상대를 좁은 틀로 가둬버릴 수 있다. 그래서 데리다는 한 존재의 규정이 수많은 차이를 수용하며 지연되는, 열린 과정이길 바란다. 그건 상대를 살리고, 내 편협한 자의식이 죽는 과정이다.

■해체주의는 자유의 철학이다

해체주의는 이렇듯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 속에 부서진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으로 끝없이 존재를 부른다. 이런 뜻에서 해체주의는 이름의 틀에서 벗어나는 자유의 철학이며, 사랑의 철학이다. 내 아집으로 인한 세계의 파괴를 지연시키는 평화의 철학인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데리다처럼 건축에 영향을 많이 준 철학자도 드물다. 그의 영향을 받은 건축을 해체주의 건축이라고 부른다. 핵심은 역시 건축에 주어진 단일한 기능과 목적, 즉 단일한 이름의 해체이다. 이에 비하면 형태나 배치의 해체 등은 부차적일 듯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생각해본다. 대학 1학년 때 헤어진 첫사랑 여인이 느닷없이 건축을 의뢰해왔다. 어떤 집인가. 서울 강남에 사는 의사 아내가 제주도 집을 맡겼다면 그건 별장인가. 아니었다. 시한부 삶을 사는 아버지 집이었다. 신축보다는 증축이 적절했다. 완공이 다 됐을 무렵 그녀도 거기서 살길 바란다. 피아노를 연주할 방이 필요했다. 단층 지붕에 방을 하나 얹는다.

그런데 영화가 흐르면서 건축가가 원래 그녀에게 집을 지어주기로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따라서 이 집은 형태로나 내용으로나 증축과 복층이다. 그것은 서울을 떠난 별장도, 아버지의 집도, 피아노방도, 그리고 첫사랑과 약속한 집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었다. 집의 의미는 이렇게 열려 있다. 건축의 목적이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지연되고 전용되며 누적되는 것이다.

건물에 단일한 의미, 기능을 부여하는 건 과거 동서양에 보편적이었다. 해체주의 건축은 이걸 넘어서려 한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은 지붕과 벽의 구분을 유동적으로 해체하고, LED 지붕으로 가상적인 하늘을 연출한다. 건물, 광장, 도시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으며, 다기능적인 개방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설계자는 '미디어, 기술, 오락, 여가 등이 융합'하는 '열린 건축'이 되길 바랐다.

■해체주의 적용한 영화의전당

건축가 정기용은 또 다른 해체주의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 프로젝트'를 가리켜 '한 건축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낭비라고 했다. '영화의전당'이 한 건축가와 국제영화제의 자존심을 위한 낭비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꾸려야 할까. 해체주의는 무엇의 의미가 언제나 '미-래' 즉 '아직 오지 않은 것'이며 열린 것으로 본다.

해체주의 건축에 맞게 이곳이 영화제로 한정되지 않고 영화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보여주는 곳이 된다면. 또 설계자의 바람처럼 영화를 넘어 '문화 교류와 변화의 촉매'가 된다면 좋겠다. 특히 영화와 같은 '빛의 예술'인 사진, 확장영화,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를 살리면서. 마침 이곳에 여러 예술 분야로 이뤄진 '두레라움 스프링 페스티벌'이 열렸다니 반가운 일이다.


# 자크 데리다

- 해체주의 창시자…'열린 건축'에 영향
- 1980년대 건축과들과 공동 작업

자크 데리다(1930~2004·사진)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전 세계에 '해체주의' 바람을 일으킨 그는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인문사회과학, 예술 전반에 걸쳐 그만큼 국제적 영향을 준 철학자도 드물다.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체주의 건축이 태어났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건축가들과 공동 작업을 했다. 본격적으로 해체주의 건축을 선언한 계기는 1988년 뉴욕현대미술관의 7인 건축전시회였다. 그 7인은 피터 아이젠만,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렘 쿨하스, 다니엘 리베스킨트, 베르나르 츄미, 또 부산 '영화의전당'을 지은 오스트리아 '쿱 힘멜브라우' 회사이다.

'쿱 힘멜브라우'는 '열린 건축'을 내세운다. 2007년에 설계한 독일 'BMW벨트'(BMW 본사 홍보관)는 실제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브라질 축제에서 시낭송 대회까지, 또 일요일 아침 연주회에서 재즈 대회까지, 그리고 지역 학교들과 결합한 청소년 교육을 비롯해 연중 50종류가 넘는 문화예술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자동차 전시회는 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전당'도 영화는 물론 다양한 '빛의 예술'들부터 살리면 좋겠다.

이지훈 철학자·필로아트랩 대표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연재됩니다.